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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켄 R3 3372년 [지식]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워켄은 움직이기 시작한 오토마타에게 질문을 했다. 오토마타의 눈동자가 워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비레아를 구해주신 고귀하신 분이시여.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분을 구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너의 이름인가?”
“비레아는 비레아. 미아님의 하인입니다… 빨리 미아님을 찾아야… 만…”
오토마타는 워켄의 질문에 대해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대답을 한 후, 입을 다물었다. 콘솔의 화면에는 전자두뇌의 작동이 실패했다는 에러 메시지가 표시되고 있었다. 전자두뇌를 다시 조사해보니 이 오토마타는 처음부터 광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100년 이상이나 과거에 제조된 오토마타였기 때문에, 아무리 애를 써봐도 전자두뇌를 완전하게 복원할 수는 없었다.
수리가 끝난 후, 비르기트의 시종에게 오토마타의 수리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과 오작동이 일어나면 무상으로 수리해주겠다는 말을 비르기트에게 전해달라고 당부하며 오토마타를 돌려보냈다. 기묘한 형태의 오토마타인 비레아를 비르기트에게 전해주고 나서 몇 주가 지난 어느 날, 비르기트의 시종이 동물 형태의 커다란 오토마타를 공방으로 가지고 왔다. 골격의 형태로 미루어 볼 때, 곰 형태의 오토마타인 것 같았다.
“이번에는 이 오토마타를 고쳐달라고 하셨어. 보수는 얼마든지 내시겠다고 말씀하시더군.”
“알겠다. 하지만 이런 오토마타를 여러 개나 소유하고 있을 줄이야. 도대체 그녀의 정체는 뭐지?”
“자세한 사항은 나도 잘 몰라. 전에 수리를 맡겼던 광대 오토마타도 비르기트님의 일족이 소유하신 토지에 보관되어 있던 골동품이라고만 전해 들었을 뿐이야.”
워켄은 곰 형태인 오토마타의 기억장치에서 자기자신에 대한 이미지를 추출하여 저장되어 있던 이미지와 똑같은 형태로 외부 장갑을 복원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검은색과 흰색이 뒤섞인 기묘한 형태의 곰이 완성되자, 비르기트가 우편을 통해 찬사의 말이 쓰여진 편지와 함께 거액의 보수를 전달했다.
비르기트의 소개 덕분에 워켄의 공방도 다양한 수리 의뢰를 받게 되어 순조롭게 번창하고 있었다. 그러나 워켄은 비르기트가 맡긴 오토마타를 수리해준 무렵부터 흉악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로젠부르그의 중간 계층 구역에서 하룻밤 사이에 대량 학살 사건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엽기적인 사건이라며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있었기 때문에 로젠부르그와 떨어져 있는 이 요새도시에도 호외 형식의 특보를 통해 최신 정보가 전해졌다.
워켄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사람의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진 범인의 몽타주를 본 적이 있었다. 신문마다 등이 크게 굽은 기묘한 형태의 오토마타인 비레아와 비슷한 용모의 엽기살인마가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워켄은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비레아가 엽기살인마라는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 게다가 비레아의 수리 의뢰는 이미 예전에 끝마친 작업이었다.
어느 날, 자신의 방에서 오토마타에 관한 문헌을 읽고 있던 워켄은 공방 쪽에서 무언가가 떨어진 듯한 소리를 들었다. 늦은 방이었기 때문에 누군가가 찾아왔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워켄은 문헌을 간단히 정리한 후, 공방을 향해서 신중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아, 미아님. 이런 곳에 계셨군요.”
수리 중인 오토마타를 보관해둔 방에서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미아님, 어째서 비레아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비레아가 희미한 조명 아래에 서서 소녀 형태로 만들어진 장난감을 향해 공손한 자세로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소녀 형태의 인형은 최초의 오토마타라는 명목으로 들여온 물건이었지만, 자세히 조사해보니 전기의 힘을 빌어 간단한 동작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한 어린이용의 완구였다.
“이게 무슨 짓인가!”
워켄이 보관실의 불을 켠 후, 크게 소리를 질렀다. 비레아가 화들짝 놀라며 워켄을 향해 돌아섰다. 커다란 안구를 이리저리 굴리면서 워켄의 모습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런 거였군… 배신을 하다니! 미아님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그 인형은 단순한 장난감일 뿐이다.”
“거짓말 하지마아아!”
비레아가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워켄을 향해 달려 들었다. 워켄이 순간적으로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벌리자, 비레아가 굉음을 울리며 워켄이 서 있던 공방의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네가, 오직 너만이! 미아님을 살려낼 수가 있다! 그런데도 너는!”
비레아의 눈은 초점을 잃고 흔들리고 있었다. 워켄을 바라보는 것 같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만둬!”
워켄은 품 안에서 침을 꺼내 들고 비레아의 이마를 찌르려고 했다. 그러나 비레아는 워켄의 정밀한 공격을 능가하는 반응속도로 도약했다. 약간 빗나간 침이 비레아의 목을 찔렀다. 비레아는 금속이 마찰하는 듯한 소리를 지르면서도 또다시 워켄을 향해 달려들었다.
“크윽…”
워켄은 비레아의 육탄돌격을 피한 후, 예비 공구를 손에 쥐고 비레아의 등 뒤쪽으로 이동했다. 밸런스가 무너진 비레아의 척추를 향해서 공구를 힘껏 찔러 넣었다.
“끼이끼끼이이익!”
비레아는 소름 끼치는 비명을 지른 후, 아무 말없이 그대로 작동이 멈췄다.
다음 날, 워켄이 비르기트를 공방으로 불렀다.
“날 공방으로 부르다니 별일이네. 무슨 용건이실까?”
“묻고 싶은 게 있어.”
워켄은 고개를 갸웃거리는 비르기트에게 완전히 기능이 정지된 비레아를 보여주었다.
“어머, 한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궁금했는데 이런 곳에 있었네.”
“잘도 그런 태평한 소리를 지껄이는군. 어젯밤, 이 오토마타가 나를 공격했다. 네가 시킨 일인가?”
“그럴 리가 없잖아. 당신을 공격해봤자 나한테 득이 될 일은 아무 것도 없다고.”
“이익이 된다면 달라진다는 말인가?”
“내가 그 질문에 대답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도시를 소란스럽게 만드는 대량학살 사건도 당신이 벌인 일인가?”
워켄은 비르기트의 대답을 무시하고 다그쳤다.
“그래. 그 오토마타는 좀 이상해. 살인추동을 억제하는 없는 모양이야. 가끔씩 마을로 내보내서 참았던 욕구를 풀 수 있게 해주었지.”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째서 바로 연락을 하지 않았나? 다시 수리하면 그런 사건은…”
“왜냐하면 그렇게 하게 내버려두는 것이 나한테는 이익이니까. 눈에 거슬리는 녀석을 없애주는 멋진 인형을 다른 사람에게 넘길 리가 없잖아?”
비르기트는 진심으로 이해가 안 된다는 듯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폭주해서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습격하는 인형이다. 그런 인형을 당신 주변에 두겠다는 말인가?”
“나는 그런 인형 따위 무섭지 않아. 비즈니스에 써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이용했을 뿐이야.”
“뭐라고…!?”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비르기트의 말에 워켄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 그럼, 그 이야기는 끝난 것 같으니 새로운 일을 의뢰할게. 다시 한번 저 오토마타를 수리해. 망가트렸으니까 책임지라고.”
비르기트는 마치 고장 난 완구를 교환해달라는 투로 명령했다.
“무리다. 오토마타의 전자두뇌를 완전히 파괴해버렸기 때문에 고칠 수가 없어.”
“그럼 전자두뇌를 새로 만들면 되잖아.”
“그것도 무리다. 내가 지닌 지식으로는 전자두뇌를 처음부터 새로 만드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워켄은 쥐어짜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과거의 오토마타를 검사하고 분석해봐도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들 만큼 전자두뇌의 구조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현재의 워켄에게는 오토마타의 제조에 필요한 지식이 결여되어 있었다.
“실망이야. 그럼 앞으로 맡기려고 했던 의뢰도 전부 없었던 일로 하겠어.”
비르기트는 워켄의 말을 변명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불가능한 일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리 한다고 해도 상관없어.”
“그래? 그럼 잘 있어. 그 동안 즐거웠어.”
비르기트는 그 말만을 남기고 공방을 떠났다.
가장 큰 고객을 잃어버린 워켄은 그때까지 수리를 하며 벌어둔 자금으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비르기트가 무슨 조치를 취한 건지 자주 일을 가져다 주던 그랜트마저도 워켄의 공방을 찾아오지 않았다. 워켄은 자금이 바닥나기 전에 다시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공방에 자신의 흔적이 남지 않도록 정리하고 있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문 앞에는 작업용 오토마타의 수리를 의뢰하러 온 송이라는 이름의 남자가 서있었다. 그리고 송의 뒤쪽에 후드를 뒤집어쓴 또 다른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송씨, 죄송합니다. 이제 그만 이곳에서 떠나려고 정리하는 중입니다.”
“어라, 무슨 일이 있었나요?”
“도무지 말썽이 끊이질 않아서 떠나려고 합니다.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흠… 다름이 아니고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은 물건이 있어서 왔습니다.”
송은 그렇게 말하며 오래된 메모리칩 하나를 내밀었다.
“워켄씨, 당신이라면 이 코덱스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오토마타 수리공들의 입을 통해 코덱스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실물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폐기 처분하려고 했던 콘솔을 다시 연결하고 메모리칩의 내용을 열어보았다. 메모리칩에는 인간의 두뇌 구조를 모방한 형태의 고성능 오토마타에 탑재되는 인공지능의 설계 구조에 대한 문서가 기록되어 있었다. 이 정보는 자신에게 부족했던 지식을 크게 보완해줄 것으로 여겨졌다.
“굉장하군! 이것만 있으면…”
워켄이 설계 구조에 대한 문서에 빠져있는 모습을 보고, 송과 후드를 쓴 남자가 마주보며 고래를 끄덕였다.
“그 코덱스를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도대체 왜? 이 코덱스는 당신들에게 도 중요한 물건 아닙니까?”
“이것을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은 세계에서 단 한 명, 당신밖에 없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 서있는 살가드에게 들으시죠.”
송의 말이 끝나자, 살가드라고 불린 남자가 워켄 앞으로 걸어 나왔다.
“레드그레이브님은 이 코덱스를 해독할 수 있는 인물을 찾고 있다.”
“그게 나라는 말인가?”
“어떤 자든 상관없다. 우리는 이 코덱스를 해독할 있을 정도로 높은 지식을 가진 기술자가 필요할 뿐이다.”
“내가 그런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고, 나에게 무엇을 원하나?”
“그 능력을 세계를 위해 써주길 바란다. 그 대신, 필요한 설비나 연구용 자금과 재료는 우리가 제공하지.”
워켄은 망설이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을 떠날 생각이었고,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기꺼이 동참할 생각이었다.
“갑시다.”
송은 워켄의 대답을 듣고 흡족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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