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켄 R4 3372년 [단편]
커다란 방에 있는 벽감 안에 현대의 동물과 상상 속의 괴물, 요정 같은 것들의 형태를 본떠 만든 오토마타들의 포즈를 취한 채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 오토마타들은 당장에라도 움직일 것처럼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지만, 그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장식품에 불과했다. 워켄은 다양한 조명을 받아 빛나고 있는 오토마타들이 「작품」의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쪽 작업은 끝나셨나요?”
등 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미모를 지닌 젊은 여성이 서 있었다.
“네. 곧 끝납니다.”
“그러면 마스터에게 보고해야겠네요.”
“그래야죠.”
“저는 마스터의 점심 식사를 준비하러 가야 하니까 당신이 마스터에게 보고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젊은 여자가 싱긋 웃으며 마치 노래를 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워켄은 책상에 설치된 통신기가 울리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주위에는 조명을 받아 환상적으로 빛나던 「작품」도 보이질 않았고, 완벽하게 정돈된 대저택도 없었다. 다채로움이나 산뜻함이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기능적인 면만을 중시한 책상이 시야에 들어왔다. 전원이 켜진 상태로 방치되어 있던 모니터를 바라보니, 송에게 양도받은 코덱스의 한 부분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코덱스를 해석하던 중에 잠이 든 모양이었다.
“워켄, 반갑네. 송일세. 그곳 생활은 이제 좀 익숙해졌나?”
통신기에서 송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곳에는 훌륭한 설비가 갖춰져 있네요. 코덱스의 해석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니 다행이군.”
송에게 코덱스 해석에 관한 진전 상황을 보고한 후, 적당히 잡담을 나누다가 통신을 끝마쳤다.
송과 살가드는 자신들이 판데모니움의 엔지니어이자, 코덱스에 남겨진 황금시대의 기술을 부활시키기 위한 계획을 주도하는 책임자라고 했다. 워켄이 코덱스의 해석 작업을 승낙하기만 한다면 판데모니움에서 무상으로 설비를 제공하고 자금을 대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그 제안을 수락한 워켄은 판데모니움에서 만든 연구 설비들이 갖춰진 가옥으로 이주하기 위해 캄브레의 동쪽에 위치한 공업도시로 이동했다.
캄브레에 있을 때보다 입수할 수 있는 물품의 수량이 감소하긴 했지만, 굳이 다른 사람과 교류할 필요 없이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홀가분한 기분 덕분에 판데모니움의 제안이 더욱 고맙게 느껴졌다. 게다가 꼭 필요한 물품은 송에게 말하면 판데모니움에서 제공해주었다. 판데모니움의 감시나 다름없는 정기 연락만 제외하면, 전반적인 생활 환경이나 경제적인 형편이 월등하게 향상된 삶을 살게 되었다.
코덱스 해석을 통해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오토마타에 대한 집착이나 갈망의 정체를 조금씩 밝혀낼 때마다 워켄이 꾸는 「꿈」의 형태도 변하고 있었다. 단편적이고 명확하지 않았던 「꿈」에 접점이 될 만한 단서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송에게서 온 통신 때문에 잠에서 깨기 직전까지 꾸던 「꿈」도 이전에 꾸었던 「꿈」과 이어지는 내용이었다.
- 워켄은 형형색색의 색깔을 뽐내는 화초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아름다운 정원을 걷고 있었다. 정원은 정원사의 역할을 수행하는 오토마타에 의해 보기 좋게 손질되어 있었고, 바닥에 깔려있는 벽돌 위에는 흙먼지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깨끗했다. 「꿈」속의 자신을 조수로 고용한 남자가 정원 중앙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남자는 이전에 꾸었던 꿈에서 본 젊은 여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실험 결과가 나왔습니다.”
남자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자, 남자가 잠시 고개를 돌려 워켄을 바라보았다.
“알았다, 식사가 끝나면 확인하도록 하지. 내가 다시 부를 때까지 오토마타를 손질하고 있거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남자는 워켄에게 대강 지시를 내린 후, 다시 젊은 여자에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젊은 여자는 워켄에게 보여주던 미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는 미소를 머금은 채로 남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손님이 오셨다.”
워켄은 코덱스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제작한 오토마타를 송에게 보여주었다. 오토마타는 체격이 큰 남성과 비슷한 크기였고, 인간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머리 부분에는 코덱스에 기록된 내용을 토대로 만든 인공지능의 프로토타입이 탑재되어 있었다. 시험용으로 제작된 오토마타는 어색한 동작을 선보이며 송에게 인사를 했다. 사전에 간단한 예의범절에 대한 교육을 받은 인공지능은 워켄의 말에 반응하여 상황에 걸맞은 행동을 선택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예상보다 뛰어난 성과를 거두셨구먼.”
“감사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코덱스에 대해 상의드릴 일이 하나 있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이 코덱스만으로는 불완전한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 코덱스가 발견된 장소에 다른 코덱스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코덱스가 발견된 장소를 알려주지. 필요하다면 이동수단과 인원도 제공해주겠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송이 떠난 후, 워켄은 시험용으로 제작된 오토마타의 전원을 끄고 자세를 바로잡은 다음에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는 방에 장식해두었다. 생활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장소와 비교하면 좁지만, 지금처럼 시험용으로 제작된 오토마타를 장식하는 용도로 사용하기에는 충분할 정도로 넓은 방이었다. 방에는 코덱스의 해석이 진행될 때마다 시험용으로 제작된 오토마타들이 비슷한 모습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워켄은 「꿈」속에서 본 자신의 행동을 따라 하게 되었다. 포즈를 취한 작품을 장식하는 것도 「꿈」속에서 여러 번 보았던 광경이었다. 「꿈」에서 본 대로 따라 하다 보면 자신의 정체가 무엇인지 생각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게 된 것이었다.
- 워켄은 인적이 드문 골목길을 달리고 있었다.
“이쪽이에요, 서두르도록 해요.”
항상 「꿈」에 등장하는 젊은 여자의 손을 잡은 채로 누군가를 피해 도망치고 있었다. 쫓아오는 자의 정체는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붙잡히면 끝장이라는 사실만은 확실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워켄과 젊은 여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기하학적인 형태로 구성된 도시 속을 도망쳐다니고 있었다. 추적자는 집요하게 워켄과 젊은 여자의 뒤를 쫓아오고 있었다. 몇 번인가 위태로운 상황에 마주치기도 했지만, 젊은 여자가 기지를 발휘한 덕분에 매번 붙잡히지 않고 도망칠 수 있었다. 워켄과 젊은 여자는 있는 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 워켄은 어딘지도 모르는 장소에서 홀로 방황하고 있었다. 옷은 더러워졌고, 정돈할 겨를이 없어서 머리카락을 너덜너덜한 천으로 대충 감아놓은 채로 버틸 만큼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인적이 드문 길을 걷고 있었다. 정상적인 모습이 아닌 이상한 차림새 탓인지 지나가는 행인들은 모두 다 워켄을 피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드디어 발견했네.”
소년 같기도 하고, 노인 같기도 한 불가사의한 목소리를 듣고 발걸음을 멈췄다. 목소리 덕분에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현실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이리저리 도망쳐다니던 도시에서 벗어나 상당히 멀리 떨어진 장소까지 다다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눈 앞에 작은 체구의 노인이 서 있었다. 어린아이가 그대로 늙어버린 듯한 섬뜩한 모습이었다.
“그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 나에게 협력해주길 바란다.”
노인은 그 젊은 여자를 구하겠다고 말했다. 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워켄은 지치고 쇠약해져 있었다. 현재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거기에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워켄을 향해 내밀어진 노인의 손은 말라 비틀어진 나무처럼 앙상한 모습이었다.
눈을 뜬 워켄은 무겁게 느껴지는 머리를 흔들며 몸을 일으켰다. 최근에는 누군가에게 쫓겨서 떠돌아다니는 「꿈」을 며칠 간격으로 계속 꾸고 있었다. 쫓기는 「꿈」을 꾼 날은 정신적으로 엄청나게 시달린 탓에 코덱스 해석 작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쳐버리기 일쑤였다. 코덱스의 해석이 복잡한 부분으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피폐한 정신으로는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 워켄은 항상 「꿈」에 등장하는 젊은 여자와 어딘지 알 수 없는 언덕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젊은 여자는 이전과는 다르게 후드를 깊숙이 눌러쓰고 있어서 어떤 표정인지 보이질 않았다.
“그 인공지능이 하는 말은 모두 엉터리다. 같이 있는 것은 너무 위험해.”
“그게 어쨌다는 말이지? 그녀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자유 의지를 얻을 수 있었어. 누군가의 명령은 이제 필요 없어.”
“그렇다면 나는 그 일을 막을 수밖에 없다.”
“소용없어. 나는 그녀와 함께 우리들을 위한 세계를 만들 거야.”
워켄은 젊은 여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여자가 쓰고 있던 후드가 바람에 날려 숨겨져 있던 얼굴이 드러났다. 젊은 여자는 미소 짓고 있었다. 마스터라고 부르는 남자에게 보여주었던 미소와 똑같은 미소였다. 그리고 그 상태로 굳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안녕. 이제 두 번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거야.”
젊은 여자는 발길을 돌려 반대쪽을 걸어갔다. 여자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에는 화려한 색으로 꾸며진 텐트가 보였다. 워켄은 젊은 여자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그 「꿈」을 꾼 이후로 워켄의 「꿈」은 또다시 단편적이고 접점이 없는 뒤틀린 상태로 되돌아갔다. 연속성이 느껴지던 「꿈」의 기억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잊혀지고 모호하게 변해갔다.
기억이 또다시 흐릿해지는 현상이 생기자, 워켄은 내면의 충동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새로운 코덱스를 발굴해서 해석이 한층 더 진전된 덕분에 인간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인공지능을 개발할 수 있는 가망성이 높아진 것도 충동을 유발하는 일에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그렇다면 충동이 시키는 대로 오토마타를 만들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계속해서 오토마타를 만들다 보면, 자신의 내부에 있는 충동이나 명확하지 않았던 기억에 대해 알 수 있는 계기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인간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인공지능이 완성된다면 송에게 코덱스를 해석해서 얻은 성과에 대한 보고도 할 수 있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끝에 결국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실행에 옮기는 일뿐이었다. 워켄은 코덱스의 해석 작업과 병행하여 소녀 형태의 오토마타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설계에 집중하려 해봐도 꿈 속에서 본 젊은 여자의 미소가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서 도무지 떨쳐낼 수가 없었다.
눈 앞에는 금색 머리카락을 지닌 소녀의 머리 부분이 놓여 있었다. 머리 부분에는 코덱스의 해석 결과를 통해 얻은 모든 정보를 활용해서 완성시킨 가장 뛰어난 성능의 인공지능이 탑재되어 있었다. 다양한 지식들을 사전에 주입해두었기 때문에 눈을 뜬 순간부터 일정 수준 이상의 성숙한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었다. 소녀가 눈을 떴다. 워켄은 소녀의 얼굴을 보며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안녕.”
“…안…녕…하…세…요…”
소녀는 더듬거리긴 했지만, 인간의 귀로도 확실하게 알아들을 수 있을 만한 대답을 했다. 결과는 상당히 괜찮은 편이었다. 워켄은 소녀를 바라보면서 미리 정해두었던 이름을 알려주었다.
“도니타. 그것이 너의 이름이다.”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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