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 살해 장면이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워켄 R1 3368년 [빼앗는 것]
밤이 왔다. 워켄은 침대에 누웠지만,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밤이 되어 '꿈'을 꾸는 것이 항상 두려웠다.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또다시 침대에 누웠다.
호겐에 위치한 병원에서 근무를 시작한 지 일 년이 지나고 있었다. 그 이전의 기억은 없었다. 누더기 옷을 걸친 채 거리를 방황하던 워켄을 거두어 준 사람은 댄이라는 이름의 의사였다.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청년에게 '워켄'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도 그였다.
댄은 의사로서 많은 사람을 구해 온 인물이었다. 변방의 도시 호겐에 거주하며 황량한 오지 마을을 찾아가 빈민가의 사람들을 돕고 있었다. 봉사 활동을 다니고, 또 한편으로는 인페로다와 미리가디아의 주요 도시에서 활동하며 그 기술력과 명성으로 지배층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고 있었다.
워켄은 그러한 댄의 밑에서 조수로 일하고 있었다. 워켄은 자신에 대한 기억은 잃은 상태였지만, 다행히 의료 지식은 기억하고 있었기에 댄의 조수로서 일할 수 있었다. 댄은 그런 워켄을 이것저것 따지지 않은 채 자신의 곁에 두었다. 의료에 대한 워켄의 정확한 기술과 지식을 인정한 것이었다.
워켄은 자는 것을 포기한 채, 자신의 방에 설치한 연구대로 향했다.
"또 불면증인가?"
어느새 댄이 워켄의 방 앞에 서 있었다. 식객에 지나지 않는 워켄의 방문에는 잠금장치가 없었다. 그보다 이 병원 자체가 너무 오래된 건물이기도 했다. 댄은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자산 대부분을 오지 마을의 순회 진료를 위해 사용했다. 워켄은 댄을 따라 마을을 방문할 때마다 이상한 것을 수집해오는 습관이 있었다.
"이건 어디에 도움이 되는 건가? 이대로는 방에 들일 수 없지 않은가."
방에 들어온 댄은 워켄의 연구대 옆으로 다가갔다. 책상 위에는 어지럽게 쌓여있는 잡동사니와 망가진 오토마타가 있었다.
"죄송합니다. 단지 맘에 들었을 뿐, 방을 어지럽힐 생각은 아닙니다…"
댄은 책상 한쪽에 놓인 개의 모습을 한 오래된 오토마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하면 된다네."
"언젠가 이 녀석들도 고칠 수 있게 된다면, 세계가 좀 더 풍요로워 질 것이라는 생각에…"
"인간 이외의 것을 고치는 것도 자신 있다는 건가? 참 재미있는 남자야, 자넨."
워켄이 보관 중인 물건은 이미 수십 년, 아니 수백 년 전에 망가진 기계였다. 소용돌이가 세계를 파괴하기 전, 황혼의 시대로 불린 세계에서 움직이던 그 기계는 지금의 지상에서는 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토마타를 만들고, 수리하고, 기동시켰던 엔지니어들은 지상 세계를 떠나 버렸다. 오토마타는 낡은 상태 그대로였지만, 워켄은 그런 기계에 강하게 매료되어 있었다.
"아니요, 아직 자신 있을 정도는 아닙니다. 단지, 이 일에 신경 쓰고 있으면 마음이 진정되기 때문에…"
"그런가. 다음에 무언가 진전이 있다면 꼭 보여주게나."
"예."
댄은 워켄의 방을 나갔다.
댄 일행은 소용돌이에 삼켜진 국경지역의 순회 진료를 위한 여행을 떠났다. 여러 도시를 돌며 어려움에 처한 수많은 사람을 도왔다. 댄과 그의 조수 워켄, 그리고 몇 명의 간호사들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워켄은 지친 몸으로 간이 진료소 옆에 설치된 텐트 안에서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워켄은 오토마타를 조정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한 남자가 자신의 행동을 감시하듯 서 있었다. 지금의 상황처럼, 그 남자의 조수로 일하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오토마타는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이 사람의 형태를 한 오토마타를 바라보며, 자신의 마음속에 불안감이 퍼지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남자가 마지막으로 스위치를 조작하자 인형이 눈을 떴다. 그리고는 워켄과 눈이 마주쳤다.
워켄은 이 순간 꿈에서 깨어났다. 밖은 아직 아침이 오기 전이었다. 자신이 꿈속에서 누구의 조수로 일하고 있었는지, 그곳은 어디였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단지 기억해 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사람의 형태를 한, 눈을 뜬 오토마타의 눈 색깔과 눈 빛, 그리고 불안감뿐이었다. 워켄은 진정하기 위해 텐트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진료소 앞에 누군가 쓰러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다가가 살펴보자, 한 젊은 여성이 쓰러져 있었다. 워켄은 여성의 상태를 살펴보다 다리에 총상을 입은 것을 발견했다. 서둘러 진료소에 있던 간호사를 불러 의식을 잃은 그녀를 진료소의 시설로 옮겼다.
총상을 입은 여성의 치료를 마친 뒤 밖으로 나오자 이미 아침이 밝아 있었다. 그녀는 아직 깨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혼자서 치료할 수 있다고 판단한 워켄은 댄을 깨우지 않았다. 댄이 일어난 뒤 워켄은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보고했다.
"그랬군. 총상을 입었던 건가… 이 주변은 안전하다고 생각했건만."
"역시 변방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여러모로 주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여자가 깨어났다는 연락을 전해 들은 워켄과 댄은, 상태를 확인하러 병실로 향했다. 댄은 상처를 확인하며 안도의 숨을 내쉰다.
"다행히 동맥은 다치지 않아 살 수 있었구나. 이름이 뭔가?"
"감사합니다. 토마라고 합니다."
"뭐, 감사는 워켄에게 하게나. 워켄의 불면증이 자네를 구한 거야. 그때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자네는 이미 과다출혈로 죽었을 걸세."
"고마워요, 워켄."
젊은 여성은 수줍은 듯 얼굴을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런데 누구에게 공격 당한겐가?"
댄의 물음에 여자는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여행 도중 강도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그 바람에 가족과도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 유감이군. 아무튼, 상처가 나을 때까지 이곳에 머물러도 괜찮네."
"감사합니다…"
토마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은 얼굴을 들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 사건이 있은 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 댄 일행은 마을을 떠나게 되었다. 간이 진료소를 정리한 뒤, 호겐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는 그 지역의 의원이나 보호소로 이송되었다.
"워켄, 부탁이 있어. 나도 데려가 줘."
토마의 상태는 목발을 짚고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이미 회복되어 있었다. 퇴원하더라도 문제는 없어 보였다.
"이곳에 남는다 해도 내게 미래는 없어, 가족도 잃어버렸고… 당신들과 함께 가면 안 될까?"
워켄은 댄에게 그녀의 일에 대해 상담했다. 댄은 '자네에게 맡기겠다'라고만 말했다. 워켄은 토마를 자신의 밑에서 일하게 했다.
호겐으로 출발을 시작한 다음 날, 캐러밴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었다. 주위에서는 말발굽 소리가 들려온다. 워켄이 얼굴을 내밀어 주위를 둘러보자, 몇 명의 도적들이 말에서 뛰어내리며 총을 뽑는 모습이 보였다. 캐러밴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총 꺼낼 생각은 접으라고!"
도적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가 총을 겨눈 채 말했다.
"노라! 그쪽 상황은 어때?"
댄의 목에 칼을 들이댄 토마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댄을 데리고 도적단이 준비해온 말에 올라탔다. 토마는 도적단의 일원으로, 댄 일행을 고립된 곳으로 끌어들여 습격을 받도록 유인한 것이었다. 워켄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막심한 후회를 했다.
워켄이 뛰쳐나와 도적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대로 보낼 순 없다!"
"주제넘은 짓은 죽음을 부를 뿐이라고."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가 총구를 겨누며 말한다.
"워켄, 일단 이곳에서 피하게. 목숨을 아껴."
댄은 도적들에게 포박된 상태로 워켄에게 말한다.
"우린 이런 영감탱이 한테 볼일 없어. 그냥 돈만 넘겨주면 되는 거야."
"지금 우리한테 돈이 있을 리가 있나!"
워켄이 소리친다.
"그건 이미 알고 있다. 근데 너희 병원이 있지 않나? 부자들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건 이미 다 알고 있다고. 그 녀석들로부터 돈을 받아서 마련하면 되는 거야."
도적들은 댄을 결박한 채 말에 태웠다. 노라는 한 장의 종이를 워켄에게 건넸다.
"영감과 교환한다. 종이에 적힌 곳으로 돈을 가져와. 돈만 마련해오면 이 영감은 풀어 주지. 그럼 이만."
도적단은 떠났다. 워켄의 손에 남겨진 종이에는 이십만 기리의 요구 금액과 교환 장소, 그리고 교환일이 적혀 있었다.
호겐에 위치한 병원을 돌아온 워켄은, 곧바로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모았다. 댄의 빈자리를 지키고 있던 부원장과 함께 병원의 돈을 끌어모았다. 댄의 후원자인 귀족에게도 연락을 취해, 약속 날짜까지 금액을 마련할 수 있었다. 미리가디아의 한 유력가는 군을 앞세워 도적들을 잡아들일 것을 제안했지만, 워켄 일행은 이를 거부했다. 혹시라도 댄에게 피해가 가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거래 장소에는 워켄 혼자 나가기로 했다. 워켄 자신이 지원한 것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댄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자는 워켄 밖에 없음을 주위의 사람들 역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약속 장소는 전망이 좋은 언덕 위에 있어, 혹시라도 워켄이 다른 사람을 데려온다면 바로 알아챌 수 있는 지형이었다. 워켄은 돈이 든 가방을 품에 안은 채, 혼자서 묵묵히 언덕을 올라갔다. 언덕에는 여섯 명의 도적이 기다리고 있었다.
"제시간에 맞췄군."
칼과 총으로 무장한 도적은 워켄을 에워쌌다.
"자, 약속한 돈은 준비했다. 어서 닥터 댄을 돌려줘."
"조급해하지 말고, 우선 돈부터 넘겨."
두목으로 보이는 자의 명령에, 마스크를 한 작은 남자가 돈을 받으러 워켄을 향해 온다.
"댄이 무사한 것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줄 수 없다."
워켄은 돈이 든 가방을 넘기지 않은 채 거부했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군. 네놈에게 선택권은 없다. 어서 넘겨."
"댄은 무사한…"
돈가방을 가지러 온 남자가 워켄의 말을 가로막으며, 입고 있던 셔츠를 벗어젖혔다.
"아 거참, 말 안 듣는 녀석이군… 죽여버려야지 안 되겠어! 돈은 이미 우리 손에 들어온 거나 다름없으니까 말이야!"
마스크를 한 남자가 손에 든 칼을 좌우로 천천히 흔들며 말한다.
"그만하고 어서 댄을 돌려줘."
"시끄러워!"
작은 남자가 소리치며 칼로 위협하는 바람에 워켄은 돈이 든 가방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만다. 그 남자는 민첩한 움직임으로 돈가방을 빼앗아 동료에게 던진다.
"자, 받을 건 받았고, 이제 남은 건 네 녀석을 처리하는 일뿐이군."
워켄은 이 도적단이 처음부터 댄을 돌려줄 생각이 없었음을 확신했다. 무언가가 워켄으로부터 튀어나왔다.
"으억…"
그 순간, 두목인 남자가 자신의 목을 감싸며 쓰러진다. 다른 도적들도 차례대로 선혈을 뿜으며 쓰러진다. 워켄 앞에 서 있던 마스크를 쓴 작은 남자, 단 한 사람만이 남아있었다.
"죽이진 않겠다."
쓰러진 도적의 목에는 바늘이 깊게 박혀 있다. 엄청난 정확성으로 경추를 관통한 바늘은 도적들의 몸을 마비시켰다.
"이… 이런 괴물 같은 자식! 뭐 하는 놈이냐!"
자신의 동료가 전부 쓰러졌다는 사실에 이 작은 남자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그건 네놈이 알 필요 없다. 댄은 어디에 있나?"
워켄 자신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내심 혼란스러웠다. 자신에게 이런 힘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저쪽에 있는 마차다… 안내할 테니… 제발, 목숨만은 살려줘..."
작은 남자는 언덕 건너편에 있는 도적들의 마차가 있는 곳으로 안내한다. 워켄은 작은 남자를 위협하기 위해 칼을 손에 쥐었다.
"이 안이다."
마차 앞에서 작은 남자는 안에 있는 동료에게 말을 건다.
"노라, 영감을 데려와 줘. 보스가 찾아서 말이야. 부… 부탁한다."
댄을 감시하고 있던 자는 워켄을 속였던 노라였다.
"아, 알았다. 바로 갈게."
노라가 댄을 데리고 마차에서 나왔다. 그녀는 아직 다리를 절고 있었다. 댄은 눈가리개를 한 채 포박되어, 노라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
"이런 얼빠진 자식!"
워켄과 남자의 모습에 이상함을 느낀 노라는 재빨리 총을 꺼내 댄의 머리에 겨눈다.
"미안! 내 잘못이 아니야! 이 자가…"
"변명은 필요 없어. 비장의 카드는 이쪽이 가지고 있다. 빨리 돈을 넘기지 않으면 영감을 없애버릴 테다!"
"돈은 넘길 테니 어서 댄을 풀어줘. 아무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
워켄은 댄만 무사하다면, 돈이나 도적들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시끄러워! 빨리 돈을 넘겨. 넘기지 않으면 둘 다 없애 버리겠어!"
노라는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다리가 아픈 건가? 그 뒤로 붕대도 갈지 못한 거지? 이런 의미 없는 짓은 그만둬, 어서!"
"시끄러워! 빨리 돈이나 넘겨!"
노라는 화를 내며 댄을 밀쳐냈다. 댄은 워켄이 있는 곳으로 비틀거리며 걷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내 다리에 힘이 빠지며 쓰러지고 만다. 워켄이 댄을 부축하기 위해 앞으로 나왔다. 그 순간, 노라는 댄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첫 번째 총알은 허리에, 두 번째 총알은 후두부를 관통한다. 선혈이 워켄을 뒤덮는다.
"네놈이 안달하니까 그런 거라고! 빌어먹을!"
노라의 투덜거림이 끝남과 동시에 바늘이 그녀와 작은 남자의 목에 박힌다. 워켄은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은 채, 단지 반사적으로 그렇게 행동한 것이었다. 워켄의 의식은 댄을 살려내야만 한다는 생각과 댄이 입은 상처는 절대 살릴 수 없다는 의사로서의 지식 사이에서 멈춰 있었다. 단지 댄의 옆에 서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 THE END -
'No.21~30 > 워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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