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시아 R1 2790년 [여행]
메르키오르는 콘솔 조작을 멈췄다. 그리고 의자에 깊숙이 몸을 맡기곤 잠깐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뜬 후 곁에 있는 보호 케이스 안에 놓인 한 장의 작은 칩을 응시했다. 보호 케이스에서 나온 굵은 케이블 한 줄이 메르키오르의 연구실 바로 밑에 있는 기계실로 연결되어 있다. 메르키오르는 콘솔에서 실행 코드를 입력했다.
"일어나거라. 스테이시아."
모니터가 작동화면에서 파장의 선이 무수히 나타난 화면으로 전환 되었다.
"안녕하세요."
그의 질문에 높은음으로 조정된 마치 소녀 같은 기계 음성이 정확하게 대답한다.
"너는 이제부터 여행을 떠난다. 이 세계에서는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신비로운 여행이다."
"네."
"지금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지. 하지만 가능 세계로 자유롭게 날아오를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너 같은 존재뿐이다."
메르키오르는 드디어 염원하던 실험을 개시하려 하고 있었다. 셀 수 없을 만큼 관측을 계속하고 조작을 반복하여 단 하나의 가능 세계를 골라내는 것이 가능한 시스템. 그것이 이 스테이시아였다.
"너는 인과의 지평선으로 여행을 떠나 아득히 오랜 세월 전부를 사용하여, 무한한 가능 세계 중에서 단 하나의 자유조작 가능한 세계를 골라내어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스테이시아는 실험기계의 메인 관측장치로 만들어진 인공지능이었다. 관측하는 쪽에 고도의 지성이 없으면 올바른 자유조작세계를 선택하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원시적인 대화밖에 할 수 없지만, 무한한 세월을 얻으면 인류가 절대로 이룰 수 없는 경지의 지성을 지니게 될 것이다.
"분부대로 따르겠습니다."
메르키오르는 칩에 입력해둔 복종회로를 점검했다. 특수 가공을 해서 복종회로의 존재 자체를 스테이시아가 인식할 수 없게 해두었다. 그러나 절대적인 힘을 얻을 것이 분명한 이 인공지능이 칩의 존재를 과연 눈치채지 못할까? 메르키오르는 그 위험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무시하고서라도 이 실험을 실행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 원래부터 작은 가능성을 무한한 가능성으로 확대하기 위한 실험이다.
"로켓의 발사는 14시간 후로 설정했다. 네가 다음에 다시 작동하는 것은 성층권을 빠져나가 제3 우주속도에 도달한 후가 될 것이다. 너는 보이드(void)를 향해서 영원히 날게 될 것이다."
보이드란, 우주의 대규모 구조 안에서 전혀 아무것도 없는 광대한 공간을 말한다. 그곳에서라면 그녀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영원과도 같은 시간을 조작과 관측에 쓸 수 있을 터였다.
"저는 무슨 일을 하게 되는 건가요?"
스테이시아는 메르키오르가 참가하고 있는 판데모니움 계획 조사실험의 일환으로서 만들어졌다. 보이드를 향해 날아가는 로켓의 진정한 의미를 숨기면서 완성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웠지만, - 우주공간에서의 케이오시움 안정도 조사실험 - 이라는 명목으로 계획하여 어렵사리 여기까지 이르렀다.
"말로도 설명해두는 것이 좋겠군. 네가 조작하고 관측하는 것은 케이오시움의 결정을 사용한 코어시스템이라 불리는 것이다. 그것은 무한히 펼쳐진 가능세계에 연결되어 있다. 너는 그 코어시스템을 인간으로서는 절대로 생존할 수 없는 아득히 오랜 시간에 걸쳐서 모두 조사하는 것이다. 케이오시움의 에너지와 자기 수복이 가능한 어모퍼스(amorphous) 두뇌를 사용해서 말이야."
"하지만 매우 오랜 시간을 사용했다고 가정하고 문제를 해결한 후에 이곳에 돌아와도 아무도 없는 것은 아닐가요? 수십 년으로는 무리일 텐데요."
"그래. 그 세계에서는 아무도 없겠지. 그러나 자유롭게 가능 세계를 선택할 능력을 얻은 너는 「이곳을 출발하자마자 문제를 해결해낸 세계」를 선택하는 것이 가능하다."
"과거를 바꿀 수 있다는 말인가요?"
"아니, 과거를 바꾸는 것이 아니다. 그런 세계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을 뿐이다. 14시간 후, 여행을 떠나는 너는 아마도 몇 주나 몇 개월 안에 그 능력을 얻어서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미래의 제가 그 문제를 해결한다고 가정하면, 여기서 지금 당장 그 능력을 얻은 것으로 하면 되지 않나요?"
"그런 세계가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 이 세계에서는 무리일 것이다. 인과를 시작하지 않으면 세계를 이동하는 것은 실현되지 않아. 인과에는 반드시 시작점이 있다. 그것이 네가 보이드로 여행을 떠나는 실험을 시작하는 순간인 거다."
"어째서 먼 우주에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건가요?"
"확률의 문제다. 모든 인과에서 가능한 한 멀어지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다. 이 장소에서는 사람의 인과, 행성의 인과에 얽매어버리게 된다. 아무것도 없는 절대적인 공허야말로 성공의 열쇠다."
"아무도 저의 계산과 실험을 멈추지 못 하게 하기 위해서인가요?"
"바로 그렇지. 네가 보이드를 향해 가속하기 시작한 순간, 지금 있는 이 세계는 결정적으로 변화한다."
"알겠습니다, 마스터."
깜빡이는 모니터 앞에서 메르키오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뭐든지."
"제가 그 결과를 얻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건가요?"
"예상대로라면 이백억 년이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메르키오르는 스테이시아의 메인 스위치를 오프로 바꾸고, 로켓에 탑재된 메인 프레임으로 스테이시아를 전송했다. 그리고 손에 쥔 복종회로 칩을 로켓에 장착하기 위해서 연구실을 떠났다.
마침내 스테이시아는 거대한 공허를 향해 여행을 떠났다.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와 함께 빛나는 점이 되어 하늘로 사라져갔다. 그녀는 외롭고 쓸쓸하게 영원과도 같은 세월을 전부 사용하여 목적을 달성해 줄 것이다.
황야에 세워진 발사시설에는 많은 엔지니어가 모여 있었다. 외부 우주를 향해 날아오르는 로켓 정도가 되면 혼자만의 힘으로 완성하고 관리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메르키오르는 이 실험의 진정한 의미를 숨긴 채 임무를 완수해낸 것이었다. 메르키오르는 발사 성공을 축하하는 엔지니어들과 인사를 나눈 후 자신의 연구소로 돌아갔다.
실험기구에 인공지능을 부여할 때 처음에는 메르키오르 자신의 클론을 만들어서 대응할 생각이었다. 센스 레코드(감각기관에 의한 지각기록)에서 재현해 낸 자기 자신이 실험의 관측자가 된다. 그러나 그 발상을 떠올린 순간 공포를 느꼈다. 영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세월 동안의 고독감, 아무도 없는 감옥에 자기 자신을 가두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가령 그것이 자신의 클론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때 문득 그의 가슴에 잔학함을 즐기는 마음 혹은 연민과도 닮은 특별한 감정이 떠올랐다. 그것은 자신이 호감을 품었던 단 한 명의 여성, 레드그레이브를 향한 마음이었다. 곁에서 함께 성장한 완전한 아름다움과 지성을 가진 이성. 레드그레이브는 메르키오르에게 있어서 어렸을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숭배의 대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 애정이나 숭배하고 존경하는 마음과는 반대로 결코 자신은 레드그레이브를 가질 수 없다는 현실을 향한 저주의 마음을 품게 하는 일이기도 하였다. 그녀는 자신을 형제처럼 대해주지만, 자신은 그녀를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몰랐다. 처음 자신의 감정의 의미를 깨달은 것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레드그레이브와 그라이바흐가 파트너로서 인정받은 이후의 일이었다. 무시무시한 질투와 열등감은 그를 일에 몰두하게 하였지만 동시에 어찌할 도리가 없는 허무함과 원망이 마음속에 쌓여만 갔다.
자신의 일생일대의 프로젝트인 이 실험을 그녀에게 바치기로 한 것은 그때였다. 메르키오르는 레드그레이브의 센스 레코드를 훔쳤다. 처음으로 상대를 의식한 어렸을 적, 12세 즈음의 레드그레이브의 센스 레코드에서 스테이시아의 인공지능을 만들어냈다. 목소리도 모습도 그녀를 닮게 하였다. 다만 거기에 아주 조금이지만 자기 자신의 요소를 조합했다. 가장 위대하지만 가장 잔혹한 실험을 위해 자신과 레드그레이브를 투영한 인공지능을 완성했다. 그리고 그녀가 새로운 세계의 신이 되겠다고 한다면 그래도 좋다고 생각할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결국, 메르키오르는 세상을 증오하고 있었다. 고독하게 태어나고, 오직 연구를 위해서 태어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복수. 세상에도 레드그레이브에게도 세상을 원망하는 자신에게도 모두에 대해 동시에 행해지는 복수. 메르키오르는 이 계획을 떠올렸을 때 너무도 기쁜 나머지 펄쩍펄쩍 뛰었다. 마침내 세상을 결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고.
그러나 실제로 이렇게 실험이 시작되자 불안함이 마음에 번져가는 것도 느끼고 있었다. 세계는 지금 여기에 이렇게 존재한다. 실험에는 항상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실험이 실패한 세계, 비참하게 패배한 자신이 존재하는 세계도 가능 세계에는 무수히 존재할 것이다. 그 세계가 지금 여기에 있는 세계는 아니라고 보증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스테이시아의 로켓은 착실하게 궤도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앞으로 3일 정도면 제3 우주속도에 도달할 것이다. 로켓의 현재 상황을 모니터에 크게 비춰둔 채 불안과 긴장을 풀기 위해서 메르키오르는 잠을 청하기로 하였다.
연구실의 구석에 둔 침대에 누워 벽에 반사되는 모니터의 빛을 바라보면서 어릴 때의 에피소드를 떠올리고 있었다. 원래부터 수면자체에 개의치 않는 생활을 해왔지만, 그래도 어릴 때는 잠들기 전에 곧잘 이런저런 상상을 하곤 했다. 잠들기 전의 자신은 일어난 후의 자신과 정말로 같은 인물일까? 라는 상상을.
- 사람은 매일 기억을 저장하고 변화시켜 간다. 잠은 기억의 정리를 해서 사람을 새로 만든다.
- 그 변화는 작지만, 오늘의 자신과 내일의 자신은 확실하게 달라져 있다.
- 그렇다면 오늘의 자신은 죽고, 내일의 자신으로서 다시 태어나는 것과 마찬가지인 건 아닐까?
- 눈을 감은 후 지금의 자신은 영원히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러한 불안도 발견도 아닌 깨달음을 소꿉친구인 두 사람에게 이야기한 적도 있었다. 레드그레이브는 웃어넘겼지만 그라이바흐는 그럴듯한 깨달음이라며 감탄해준 것을 기억하고 있다. 메르키오르는 그런 어린 날들의 기억을 차례차례 더듬어 보면서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방문객을 알리는 초인종 소리에 눈을 떴다. 스테이시아의 모니터에 이상은 없다. 안심하며 메인 모니터의 스위치를 끄고 초인종을 누른 사람을 확인하기 위해 다른 모니터에 문 앞의 영상을 띄웠다.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그라이바흐였다.
"무슨 일이야?"
그라이바흐가 찾아오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애당초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메르키오르의 연구소는 누구라도 방문하고 싶어질 만한 장소는 아니었다.
"네가 훔쳐간 것을 돌려받기 위해 왔어."
메르키오르는 순간 말을 잃었다. 스테이시아를 만들 때에 그라이바흐의 연구를 그에게 허락받지 않고 무단으로 이용했던 것이다.
"화가 난 것이 아니야, 메르키오르. 우리는 형제야. 다만 이야기가 듣고 싶을 뿐이야."
"알았어."
메르키오르는 그라이바흐를 연구소 안으로 불러들였다.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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