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시아 R3 2790년 [방문자]
메르키오르는 스테이시아가 탑재된 로켓의 현재 좌표를 확인해보았다. 로켓은 제3 우주속도에 도달하지 못하고 그 전 단계의 좌표에 위치해 있었다. 하지만 감시용 모니터에는 스테이시아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이고 있었다. 실험이 기대 이상으로 훌륭하게 성공했다는 고무적인 결과를 얻은 메르키오르는 점차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다음 명령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마스터."
"우, 우선 네가 얻은 결과를 보여다오."
메르키오르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스테이시아는 연구실로 들어간 후, 보이드에서 이루어진 실험 관측을 통해 입수한 소녀의 모습을 드러냈다. 메르키오르가 손을 뻗자, 스테이시아가 메르키오르의 손을 마주잡았다. 메르키오르는 스테이시아의 손에서 온기가 느껴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라이바흐, 이걸 봐라! 실체가 존재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엔트로피의 컨트롤에 성공했단 말이다."
그라이바흐는 두 사람의 대화, 아니, 한 사람과 불가사의한 한 개체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책상 위에 놓여있던 펜을 천천히 들어 올리더니 스테이시아를 향해 힘껏 던졌다.
"이게 무슨 짓이야!"
메르키오르가 고함을 지른 순간, 펜은 허무하게도 스테이시아의 몸을 통과하여 땅바닥으로 나뒹굴었다.
"눈속임이군. 이건 실체 따윈 존재하지 않는 투영된 영상에 불과해."
"그럴 리가, 분명히 이 손으로…"
줄곧 마주 잡고 있던 손을 끌어당겨서 스테이시아의 몸을 만져보았다. 감촉은 분명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아니, 설마…"
"메르키오르, 왜 그래?"
그라이바흐가 메르키오르에게 물었다.
"아니, 그랬던 거였군…"
메르키오르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스터, 죄송합니다. 실체화는 아직 불가능합니다. 이 모습이나 감촉은 여러분의 뇌에 미약한 신호를 보내서 인식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스테이시아가 현재 상황에 대한 설명을 했다.
"그랬군. 하지만 에너지의 크기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야. 세계의 경계선을 뛰어넘어서 정보가 전해진다는 사실이 훨씬 더 중요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메르키오르가 금세 활기찬 모습을 되찾았다.
"그라이바흐, 실험은 실패한 게 아니다. 내 실험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너에게도 보여주마."
메르키오르는 그라이바흐가 여캐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 스테이시아, 네가 본 세계를 우리에게도 보여다오."
"알겠습니다. 마스터."
스테이시아가 대답을 한 순간, 연구실이 기묘한 세계로 변모했다. 금속 재잘의 담쟁이가 주변을 뒤덮었고, 시시각각 다양한 색으로 변하는 과일처럼 보이는 열매가 맺혀있었다.
"금속… 숲?"
잠시 침묵에 빠져있던 그라이바흐는 혼잣말을 내뱉으며 끊임없이 색이 변하는 과일 같은 물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방금 전에 스테이시아의 몸을 향해 펜을 던졌을 때처럼 그라이바흐의 손이 과일을 그대로 지나치며 통과했다. 담쟁이를 만져보니 메르키오르의 연구실의 벽을 만진 것 같은 감촉이 전해졌다.
"환각이군."
"아니야, 그라이바흐. 이건 현실이야. 내 말이 맞지? 스테이시아."
"네. 이곳은 끝없이 이어져 있는 이 장소의 무한한 가능성이 펼쳐진 가능세계입니다. 저는 그 모든 가능세계에 도달할 수가 있습니다."
스테이시아가 자랑스럽다는 태도로 말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세계가 존재합니다."
그러자 주위의 세계가 녹아내리더니 이번에는 망망대해가 눈앞에 펼쳐졌다. 스테이시아가 웃으면서 두 사람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검은 그림자가 수면에 펼쳐지고, 거대한 물고기처럼 생긴 괴물이 수면을 차고 솟구쳐 올랐다. 그 괴물은 순식간에 스테이시아를 집어삼키고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아하하하하."
그런 웃음 소리가 들린 것 같은 기분이 든 순간, 스테이시아가 또다시 공중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용암이 작영하는 세계가 나타났다. 펄펄 끓어오르는 마그마, 거대한 분화구에서 치솟아 오르는 연기, 머리 위로는 무수한 화산석이 날아드는 모습이 보였다. 생물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죽음의 세계였다.
그렇게 스테이시아는 몇 번에 걸쳐 세계를 변화시켰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쌓아 올린 문명이 있는 세계, 인간이 아직까지도 수렵과 채집 생활에 머물러 있는 세계, 기괴한 진화를 거친 문명세계 등등, 다양한 가능세계가 차례차례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있었다.
"이제 그만!"
그라이바흐가 고함을 질렀다. 메르키오르가 눈짓을 보내 스테이시아를 제지했다. 가능세계가 사라지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원래 있던 연구실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그라이바흐, 나는 모든 가능성을 손에 넣었어."
"어처구니없는 소리하지 마. 그저 환영일 뿐이잖아."
"모든 가능세계를 네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잖아. 가능세계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그 어떤 연구라도 능가할 수 있는 엄청난 정보란 말이다."
"이런 건 모두 눈속임에 지나지 않아."
"믿지 못하겠다니 어쩔 수 없군.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런 건 미쳐버린 자의 꿈이나 다를 바 없는 환영이다."
"이런 무한한 세계들을 네 눈으로 직접 보고도 아직도 이해를 못한 건가? 아무래도 내가 너를 잘못 본 모양이구나. 그라이바흐, 너에게 실망했다."
"네가 무엇을 믿든 그건 너의 자유다. 하지만 친구로서 충고 하나만 해두지. 눈속임은 눈속임일 뿐이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나는 성공했단 말이다."
분명히 실험의 일부분은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방금 전에 본 것이 진정한 가능세계라는 확실한 증거는 아무것도 없었다. 진정한 가능세계라고 단언할 수 없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었다.
"난 이제 그만 돌아가겠어. 메르키오르, 이 건에 대해서 레드그레이브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게. 너는 조금 더 냉정하게 생각해보길 바란다."
환영을 보고 느낀 흥분을 떨쳐내기 위해 애를 쓴 끝에 간신히 냉정한 모습을 되찾은 그라이바흐가 메르키오르에게 충고를 남겨두고 연구소를 떠났다.
그라이바흐가 떠난 후, 메르키오르는 스테이시아를 더 가까이 불러들였다.
"자, 너의 힘을 이용하여 나에게 가능세계를 보여다오."
스테이시아는 의자에 앉아있는 메르키오르의 손을 잡고 무릎을 꿇었다.
"네, 마스터."
스테이시아는 진심으로 기쁘다는 표정을 지으며 메르키오르의 뇌에 가능세계의 영상을 전송하기 시작했다.
스테이시아가 귀환한 후로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메르키오르는 낙담에 빠져 있었다. 스테이시아의 힘을 빌려 여러 가능세계들을 살펴 보았지만, 유용한 성과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던 것이었다. 가능세계 중에는 현재의 세계보다 시간이 좀 더 흐른 미래의 세계도 있었고, 아직 현재의 세계에 미치지 못하는 과거의 세계도 있었다. 미묘하게 다른 무한한 세계를 확인할 수만 있다면 세계를 뜻대로 조종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메르키오르는 그 실험에서 몇 번이나 실패를 거듭하고 있었다.
최초의 실험은 간단한 암호해독 작업이었다. 문제를 상정하고 해독용 열쇠의 역할을 하는 수열을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설정하고 문제를 풀어보았다. 당연히 실패하리란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 후에 스테이시아의 힘을 빌려 「문제를 푸는 일에 성공한 가능세계」를 보여달라고 해봤다. 그 가능세계에서 이용한 열쇠를 현실 세계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실험은 성공리에 끝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몇 번이나 실험을 거듭해봐도 계속 실패만 하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이루어진 계산을 통해 수열의 열쇠를 틀림없이 확인했고, 그 자리에서 바로 메모도 해두었다. 수열의 열쇠가 올바르다는 사실도 여러 번에 걸쳐 증명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열쇠로는 현실 세계의 암호를 해독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애를 써봐도 넘을 수 없는 벽 같은 것이 존재했다. 실험이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을 때는 주사위 하나의 결과를 예상하는 일조차 불가능해졌다.
무언가가 잘못되어 있었다. 스테이시아는 분명히 보이드에서 귀환했다. 수많은 가능세계를 눈 앞에 펼쳐 보이는 일도 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테이시아는 현실 세계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가 없었다.
"이런 건 미쳐버린 자의 꿈이나 다를 바 없는 환영이다."
그라이바흐가 내뱉었던 그 말이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맴돌고 있었다. 메르키오르는 오로지 집념만으로 버티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마스터."
스테이시아가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메르키오르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메르키오르는 무심결에 스테이시아의 손을 뿌리쳤다. 감촉은 분명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스테이시아는 진심을 담아 사죄하고 있었다. 그라이바흐가 만든 감정 프로그램이 완벽하게 작동하는 덕분에 그녀는 자신의 마스터가 슬퍼하는 모습에 연민을 느끼고 있었다. 그 사실이 메르키오르는 점점 더 초조하게 만들고 있었다.
"잠시만 혼자 있게 해줘."
메르키오르는 그 말을 내뱉은 후,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새로운 사색에 빠져들었다.
"실험을 개시하겠습니다."
스테이시아의 목소리가 연구실에 울려 퍼졌다. 연구실에는 모든 공간을 빠진없이 채울 정도로 거대한 장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스테이시아를 통해 얻은 지식과 견해를 토대로 가설을 세우고 결론을 도출할 때까지 대략 십 년이 걸렸다. 그 가설을 증명하기 위한 장치가 완성되기까지 또다시 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가능세계를 조종하기 위해서는 역시 강렬한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스테이시아는 틀림없이 가능세계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현실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가 없었다. 일종의 벽이 존재했던 것이었다.
메르키오르는 그 장벽을 넘기 위해 다원세계에 대해 상호 작용이 가능한 「문」을 설치하는 장치를 만들었다. 거대한 장치가 엄청난 굉음을 내면서 작동하기 시작했다. 장치의 내부에 설치된 케이오시움 코어와 에너지를 방출하는 장소는 항상 모니터를 통해 확인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노초 단위의 공백도 없는 완벽한 관측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메르키오르는 모니터에 연달아 표시되는 케이오시움 코어의 상태와 장치의 중앙에 마련된 빈 공간을 교대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 시간, 두 시간, 시간이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메르키오르는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이 장치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조바심을 내본들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된 것이었다. 휴식 시간을 포함해서 세 시간쯤 흘렀을 무렵, 처음으로 중앙의 공간에서 변화가 발생했다.
"장치 중앙 부분에서 공간이 뒤틀리는 현상이 확인되었습니다."
스테이시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인간이 관측할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뒤틀림은 아니었다. 원자 수준의 관측이 가능한 스테이시아였기 때문에 발견해낸 변화였다.
"크기는?"
"발생한 시점에는 원자 단위의 사이즈였습니다. 조금씩이긴 하지만 뒤틀림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네 시간 정도가 지나면 육안으로 관측할 수 있는 크기로 확대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알았다. 관측을 지속해라."
스테이시아가 말한 대로 네 시간이 경과했을 무렵, 공간의 뒤틀림은 인간의 육안으로도 확실하게 관측할 수 있는 빛으로 변했다. 빛은 형형색색의 광채를 내뿜으면서 서서히 회전하고 있었다. 메르키오르의 눈에는 마치 지상에서 관측한 밤하늘을 수놓는 소용돌이 형상의 은하계처럼 보이고 있었다. 아주 느린 속도이긴 하지만, 빛의 크기가 점차 확대되더니 젖먹이 아기와 비슷한 크기가 될 때까지 커져서 감싸 안을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메르키오르는 다양한 빛들을 차단하는 고글을 착용하고 빛의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만약에 빛의 건너편에 또 다른 세계의 모습이 보인다고 가정한다면, 인간의 눈에 해를 끼치는 물질이나 빛을 발하는 물체가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고글 너머로 옅은 녹색 빛이 그 주변 일대를 비추고 있는 세계가 보였다. 풀과 나무는 유리 재질처럼 보이는 물질로 구성되어 있었고, 언제나 강풍이 몰아치는 황야 같은 세계였다. 메르키오르의 눈앞에 다른 세계의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문」이 확실하게 열린 것이었다.
"좋아,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 촬영기를 저쪽 세계로 보내."
메르키오르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문」에서 멀어졌다. 지금은 안정된 상태처럼 보이는 빛이지만, 어떤 계기로 사라지게 될지 몰랐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영상 촬영기를 투하합니다."
머니퓰레이터와 연결되어 있는 소형 촬영기가 빛의 중심부를 향해 진입하고 있었다.
"영상 기록은 제대로 촬영되고 있어?"
"네. 모니터로 전송하겠습니다."
여러 개의 모니터 가운데 하나의 모니터에 방금 전에 메르키오르가 본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저쪽 세계의 생물이 촬영기 바로 옆으로 천천히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쪽 세계의 물질은 아무 문제없이 보낼 수 있는 모양이군."
촬영기는 한동안 다른 세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촬영기에 충격이 전해지더니 영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생긴 거지?"
"저쪽 세계의 생물이 촬영기를 공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촬영기를 이쪽 세계로 회수하겠습니다."
"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촬영기가 이쪽 세계로 회수되었다. 촬영기가 완전히 회수되자마자, 곧바로 빛이 수축하기 시작했다.
"역시 물질을 빈번하게 이동시키는 일은 불가능하단 말인가?"
"안정화를 위한 실험을 거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빛은 회전속도를 높이고 있었지만, 속도에 비례하는 것처럼 수축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빛의 강도도 점점 강렬해지고 있었다.
"스테이시아, 장치를 멈추거라."
"알겠습니다."
빛은 순간적으로 강렬한 빛을 내뿜더니 금세 사라졌다. 스테이시아가 다른 반응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폭주한 건가? 어떤 상황인 거지?"
"장치의 중앙부에서 생체반응이 확인되었습니다. 마스터, 이것은…"
빛의 소용돌이가 발생했던 장소에 작은 생물의 모습이 보였다. 강아지와 비슷하게 생긴 그 생물은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느긋한 모습으로 하품을 하고 있었다.
"그 빛을 통해 건너왔다는 말인가? 촬영기가 저쪽 세계로 건너간 것처럼…"
사고가 일어나긴 했지만, 실험은 성공했다. 열린 문의 규모가 작기는 해도 메르키오르는 자신의 가설을 증명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성과를 거뒀다.
"이 생물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언제까지 생존할 수 있는지 관찰해보도록 하자. 표본으로 만드는 것보다는 좋은 실험이 될 거야. 이 생물이 이쪽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면 상호 작용에 대한 연구를 증명할 수 있어."
"알겠습니다. 하지만 위험한 상태로 변했을 때에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생물이 물리적으로 위험하게 변할 가능성은 매우 높았다.
"흠, 신경 쓰지 마라. 치명적인 생물은 아닐 것이다."
메르키오르는 이상할 정도로 낙관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마스터."
"에잇, 시끄럽다!"
메르키오르의 말투가 거칠어졌다. 메르키오르늬 거친 목소리가 스테이시아에게 전해진 순간, 그녀의 내부에서 「메르키오르의 말에 따라야 한다」라는 의식이 갑자기 생겨났다. 그리고 그 의식은 「이 생물을 격리하여 메르키오르의 안전을 확보한 상태로 사육한다」라는 사고로 전환되었다.
"알겠습니다. 사육할 공간을 구축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문」의 연구 이론은 실제로 증명되었다. 어느 날, 메르키오르는 연구를 다음 단계로 진전시키기 위한 사전 준비의 일환으로 정기적인 의료 관리를 받을 수 있는 시설을 향해 출발했다. 메르키오르가 자리를 비운 틈을 노리기라도 한 것처럼 20년 동안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던 연구소에 그라이바흐가 찾아왔다.
"마스터는 부재중이십니다. 돌아가 주시기 바랍니다."
메르키오르가 따로 명령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주인이 자리를 비운 동안에는 아무도 들여보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스테이시아가 싸늘한 말투로 그라이바흐에게 돌아가라고 말했다.
"알고 있다. 오늘은 메르키오르가 아니라 너에게 용건이 있어서 찾아왔다."
"돌아가 주십시오."
"너에게 탑재되어 있는 인공 지능을 만들어낸 부모가 나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해도 돌아가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무슨 뜻입니까?"
"메르키오르가 너에게 아무것도 이야기해주지 않은 모양이구나."
그라이바흐의 말을 들은 스테이시아는 경악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자신을 만들어낸 인물이 메르키오르라고 알려준 적은 없었지만, 당연히 그럴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라이바흐의 발언이 의미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스테이시아는 그 말의 의미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용건을 말씀해주십시오."
잠시 동안 침묵이 흐른 후, 스테이시아는 연구소의 문을 열었다.
- THE END -
'No.31~40 > 스테이시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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