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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41~50/메리

메리 R1 [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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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R1 [꿈길]


 은은한 햇살이 내리쬐는 테라스. 메리는 이웃나라 왕자이자 약혼자인 빌헬름과 테라스에서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허브 화원 시찰은 어떠셨나요?"
 "잘 자랐더군."
 "아아, 차 맛이 어떨지 기대되네요. 빌헬름님의 나라에서 재배된 허브로 끓인 차는 무척 부드러운 맛이 나거든요."

 

 메리는 작은 나라이긴 하지만 자원과 자연이 풍요로운 나라의 공주였다. 위엄을 갖춘 왕인 아버지와 자상한 어머니, 믿음직스러운 여기사 루디아와 함께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북쪽에 위치한 대국이 메리의 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풍부한 자연과 광산을 탐낸 나머지 왕녀인 메리에게 국혼을 요청했다. 그러나 메리는 깊은 인연으로 맺어진 이웃나라의 왕자 빌헬름과 혼인을 하기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메리의 아버지가 대국의 혼인 요청을 거부한 날부터 평화롭던 일상을 위협받기 시작했다.

 

 '자원을 합법적으로 빼앗을 수 없다면 나를 무너트려 버리겠다.'

 

 그런 생각에서 비롯된 대국의 침략을 받게 된 것이었다.

 나라의 상징이었던 정갈한 분위기의 성은, 대국 군대의 침략을 받아 눈깜짝할 사이에 불길에 휩싸였고 왕과 왕비는 사로잡히고 말았다. 천만다행으로 메리는 전속기사인 루디아와 함께 도망칠 수가 있었다. 메리는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난 후에 루디아에게 물었다.

 

 "루디아, 나는 나라를 구하고 싶어. 뭔가 방법이 없을까?"

 "일단 이웃나라에게 구원을 요청하죠. 빌헬름님이라면 분명히 힘을 빌려 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분들을 말려들게 할 수는…"

 "공주님. 북쪽 대국은 무시무시한 나라입니다. 우리나라를 침략하는 것만으로 끝낼 리가 없습니다. 이웃나라에도 북쪽 대국의 무서움을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루디아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메리는 이웃나라로 몸을 피하고 빌헬름에게 도움을 청했다. 북쪽 대국의 횡포 때문에 고심하던 이웃나라의 왕은 메리의 사정을 전해들은 후, 메리와 루디아에게 식사와 침실을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메리에게 한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세계의 이치에 대해 통달한 현자가 성스러운 산에 살고 있어요. 하지만 현자의 힘을 빌리기 위해서는 공주 본인이 몸소 나서서 시련을 극복해야만 할 거에요."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다 하겠습니다. 루디아와 함께 성스러운 산으로 가겠습니다."

 메리와 루디아는 이웃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자라고 알려진 가면을 쓴 기사를 일행으로 맞아들이고 성스러운 산으로 출발했다. 가면을 쓴 기사는 과묵한 사람이었다. 그는 메리와 루디아가 나누는 대화에 참견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전방을 경계하고 지키며 앞장서서 걷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기사의 정체가 밝혀졌다. 가는 도중에 마주친 마수의 공격으로 기사의 가면이 벗겨져 날아가고 말았다.

 

 "빌헬름님!?"

 

 가면을 쓴 기사의 정체는 빌헬름이었다. 빌헬름은 손에 쥔 검으로 마수를 물리친 후, 장난을 치다 들켜버린 어이아이처럼 겸연쩍은 표정으로 메리를 바라보았다.

 

 "여행이 끝날 때까지 숨길 생각이었는데."
 "왜죠? 국왕 전하께서 심려하실 거에요. 서둘러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미래의 반려자가 될 사람을 내버려둘 수는 없잖아. 이미 아버지께 허락도 받았다고."

 

 빌헬름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메리의 머리를 자상하게 쓰다듬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루디아가 활짝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메리는 빌헬름, 루디아와 함께 성스러운 산을 오르고 있었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 도중에 현자가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설치해둔 함정에 빠지거나, 마수의 공격을 받기도 했지만 세 사람이 힘을 모아 헤쳐나갔다.

 

 "소국의 공주여, 이곳까지 오는 길이 쉽지 않았을 텐데 장하군. 시련을 극복한 그대에게 지혜를 전수하도록 하지."

 

 성스러운 산에 사는 현자는 소년과 청년의 중간쯤으로 보이는 연령의 남자였다.

 

 "현자시여, 북쪽 대국의 마수에서 우리나라를 구원할 수 있도로 지혜를 빌려주세요."

 "북쪽의 대국은 악마에게 지배당한 나라다. 악마를 쓰러트리기 위해서는 동쪽 바다의 신전에 잠들어 있는 비보의 힘이 필요하다."
 "비보?"
 "신전에 잠들어 잇는 비보는 세계를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힘이 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강한 신념을 지닌 사람만이 비보를 손에 넣을 수 있다고 한다."

 

 현자는 오래된 문헌에 디록되어 있는 내용을 전해주었다.

 

 "비보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고생스럽기 그지없는 길을 가야만 할 것이다. 그래도 가겠나?"
 "네. 저는 나라와 부모님을 구하고 싶어요. 현자 구스타브님, 지혜를 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도 함께 가도록 하지. 세계를 인도하는 비보와 세계를 이끄는 공주를 내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고 싶군."

 

 현자는 지팡이를 쥐고 일어섰다. 이렇게 해서 나라를 구하기 위한 여행에 희대의 현자 구스타브가 합류하게 되었다.

 

 구스타브의 마법과 지혜는 곤란한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큰 힘이 되었다. 동쪽 바다 깊은 곳에 잇는 신전에 들어갈 때에도 구스타브의 지혜가 도움이 되었다. 비보를 지키기 위해 설치되어 있던 함정이나 장치들을 해제하고 마침내 신전의 깊숙한 곳에 안치되어 있던 비보 앞에 이르렀다. 복잡한 다면체로 구성된 비보가 강렬한 빛을 내뿜으며 신전 내부를 비추고 있었다.

 

 "공주여, 비보를 취하라. 그대를 보물을 얻을 자격이 있다."

 

 메리가 손을 뻗자 비보가 메리의 손 안에 들어왔다.

 

 "이것이 비보…"

 

 비보는 메리의 손 안에서 옅은 빛을 뿌리고 있었다.

 

 "오오. 나에게도 자세히 보여주지 않겠나?"
 "네."

 

 메리는 구스타브에게 비보를 보여주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비보. 세계를 움직이는 진정한 힘을 지닌 세계의 요새."

 

 구스타브가 비보를 손에 쥐더니 갑자기 크게 웃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내 계획대로 되었군. 그럼 쓸모가 없어진 공주는 이제 그만 사라져 주실까?"

 

 구스타브의 지팡이가 괴이하게 빛난 순간, 한 줄기 섬광이 메리를 향해 발사되었다.

 

 "공주님!"

 

 메리가 루디아에게 떠밀려 넘어졌다. 루디아는 메리를 대신해서 구스타브의 마법을 몸으로 받아냈다.

 

 "루디아!"
 "구스타브! 현자인 당신이 어째서!?"
 "현자라고 칭송 받던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나는 이 비보를 손에 넣기 위해 긴 세월을 기다렸다."
 "우리를 속인 것인가!?"

 

 빌헬름이 검을 뽑아 들고 구스타브에게 달려들었지만 비보의 힘 때문에 튕겨나가고 말았다.

 

 "공주님…"
 "루디아, 안 돼… 죽지 마."
 "부디… 살아남으시길…"
 "별 것도 아닌 게 성가시군."

 

 구스타브의 지팡이가 또다시 빛을 내뿜었다. 루디아는 그 빛을 맞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로 재로 변하고 말았다. 넋이 나간 메리와 빌헬름을 힐끗 쳐다본 구스타브는 검은 빛이 나는 화살로 북쪽 대국으로 향했다. 슬픔에 잠긴 메리와 빌헬름은 루디아의 마지막 말을 가슴에 묻어두고 북쪽 대국으로 향했다.

 북쪽 대국은 비보가 내뿜는 사악한 빛에 휩싸여서 모든 생물이 멸종하고 마수들이 활보하는 지옥 같은 곳으로 변해 있었다. 메리와 빌헬름은 어둠의 중심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둠의 중심부에는 북쪽 대국의 국왕이 머무는 성이 있었다. 성에 도착해보니 구스타브가 왕좌에 앉아있었다. 구스타브는 비보를 손에 들고 마수인지 사람인지 구별할 수 없는 부하를 거느리고 있었다.

 

 "흠, 나를 쫓아서 이곳까지 올 줄이야. 수고가 많군 그래."
 "북쪽 대국의 왕은 어디에 있나!?"
 "처음부터 북쪽 나라의 왕 같은 건 없었어. 내 분신이 그 자리를 대신했지."

 

 구스타브는 부하들을 물러나게 한 후, 메리와 빌헬름의 앞으로 걸어왔다. 빌헬름이 검을 뽑았다. 이미 많은 마수의 피를 머금은 은빛의 검은 찬란했던 빛을 잃어버렸다.

 

 "비보를 어떻게 할 작정인가?"
 "너희들에게 말해봤자 이해할 리도 없을 텐데? 나는 쓸데없는 일은 하지 않는 주의라서 말이야."
 "너, 이 자식!"

 

 빌헬름이 구스타브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구스타브는 지팡이로 검을 가로막고 빌헬름에게 마법을 구사했다. 거리를 벌리려고 하는 구스타브와 거리를 좁히기 위해 바싹 다가가서는 빌헬름이 대치했다. 공세를 늦추지 않은 빌헬름의 검이 마침내 구스타브가 들고 있던 비보를 튕겨냈다. 굴러 떨어진 비보를 메리가 재빨리 집어 들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구스타브의 마법이 빌헬름의 복부를 관통했다.

 

 "메리…"
 "아아… 이럴 수가… 빌헬름!"

 

 빌헬름은 비보를 들고 있는 메리를 바라보며 애써 웃어 보이고는 숨을 거뒀다. 메리는 빌헬름의 시체를 끌어안고 숨죽여 흐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건방지게 비보를 공격하다니. 꼬맹이 아가씨, 비보를 나에게 넘겨라."

 

 메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던 구스타브가 메리를 향해 지팡이를 휘둘렀다. 구스타브의 마법이 메리를 덮쳤지만 비보의 힘이 구스타브의 마법을 가로막았다.

 

 "…용서하지 않겠어."

 

 왕좌가 놓여 있는 공간에 메리의 냉랭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메리가 간절하게 염원하자 메리의 마음에 감응한 비보가 검붉은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구스타브님, 이곳은 위험합니다."

 

 부하의 말은 구스타브의 귓가에 전해지지 않았다.

 

 "이것이 비보가 지닌 힘… 나의 소망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열쇠."

 

 구스타브는 비보의 빛에 매료되고 말았다. 구스타브의 눈에는 검붉게 빛나는 비보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모두 사라져 버려!"

 

 메리의 눈에서 눈물이 넘쳐 흘렀다. 눈물이 비보를 적신 그 순간, 메리에게서 퍼져나간 검붉은 어둠이 세계를 뒤덮었다. 한 세계가 종말을 고했다. 인간도, 동물도, 생명이 없는 것들도 모조리 어둠이 집어 삼켰다.

 "이 세계도 아닌가 보네요."

 

 핑크색 의상으로 몸을 감싼 어린 모습의 메리가 아무 것도 없는 공허한 공간에서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옅은 빛을 뿌리는 다면체의 결정이 공중에 떠 있었다. 손으로 결정을 감싸자 결정이 천천히 회전하며 각 면마다 다양한 세계를 비추기 시작했다.

 

 "오빠…"

 

 다면체의 결정이 메리의 중얼거림에 반응하는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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