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o.41~50/메리

메리 R3 [저항]

 

더보기

메리 R3 [저항]


 그것은 3398년 말부터 이어진 파멸로 향하는 길이었다. 상업도시 프로비던스를 뒤덮은 시체의 독기는 각국이 피나는 노력으로 마련한 대책을 물거품으로 만들며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총성이 울려 퍼진다. 이형의 집단과 하얀 프레임을 드러낸 전투인형들이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형도 전투인형도 아닌 마을 사람들은 갑자기 벌어진 전투에 황급히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요! 빨리!"

 

 그러던 중, 넝마가 된 전투복과 라이플을 든 한 집단이 우왕좌왕 도망치는 사람들을 유도하기 시작했다. 집단은 나이가 얼마 되지 않은 소녀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자, 이제 괜찮습니다. 여기 타셔서 안전한 마을로 가도록 하죠."
 "아, 아… 아아……"

 

 어리둥절해 하는 사람들을 대기 중이던 기계 말이 끄는 마차에 차례차례 태웠다. 이형과 전투인형들은 이쪽 상황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지 쫓아오려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구출된 사람들과 전투복을 입은 단체를 태운 마차는 남쪽을 향해 출발했다.

 그란데레니아 제국과 루비오나 간의 전쟁은 사자의 군세로 인해 어느 쪽도 승리를 거두지 못한 채 끝은 맞았고 두 나라는 죽음의 세계에 삼켜져 멸망했다. 하지만 이 대사건조차도 새로운 전쟁의 서막일 뿐이었다.

 앞선 전쟁에서 침묵을 지켰던 종교 국가 미리가디아가 상식을 벗어난 힘을 가진, 초인이라고 불리는 존재를 각국에 파견해 혼란한 세계의 통일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리가디아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초인이 지배하는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미리가디아가 내건 세계의 실현에 찬성하고 초인화 의식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구원의 길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 제동을 건 것이 공중에 대도시를 구축한 수도 판데모니움이었다. 판데모니움은 자신들이 세계를 관리하고 평정하는 자들이라고 주장하며 미리가디아를 배척하기 위해 세계각지에 전투인형들을 보냈다. 당연히 미리가디아의 초인들은 이에 대항했다. 이렇게 판데모니움과 미리가디아 간의 진흙탕 싸움 같은 전쟁이 시작되었다.

 "어이, 우릴 대체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마차 안에서 응급처치를 받은 남성이 치료를 담당하는 소녀에게 물었다.

 

 "우리 레지스탕스가 거점으로 삼고 있는 마을입니다."

 

 소녀는 웃음 지으며 답했다.

 

 "저기, 소문의 그 요새도시에?"
 "네. 그곳으로 가면 당분간은 안전하게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지상에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미리가디아든 판데모니움이든 양쪽 다 똑같이 적이었다. 초인조직으로 변한 미리가디아는 말할 것도 없고, 판데모니움도 세계의 관리 평정을 내걸었으면서 사자의 군세에 습격당해 도망 다니는 사람들을 무시하며 구조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남겨진 사람들은 재앙을 피해 계속해서 남쪽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마침내 '소용돌이'와 대적했던 연대가 사용했던 시설을 발견해 그곳을 거점으로 마을을 세웠다. 또한 판데모니움에게 버림받은 지상으로 파견된 엔지니어들과 협력하여 시설을 수리하고 무장을 갖췄으며 사자의 군세로부터 효과를 발휘할 수 있게 장벽을 개조하는 등 단순한 마을이 아닌 요새도시를 완성했다.

 '지상에 단 한 곳뿐인 인간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마을'이라는 소문이 구전되어가면서 유입되는 사람들의 수도 점점 늘어갔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세계를 자신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게 하기를 원했으며 '레지스탕스'라고 칭하게 되었다. 그들은 미리가디아와 판데모니움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 각지에서 분투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보호 임무도 행하고 있었다.

 초인과 이형, 전투인형, 사자의 군세, 그들이 활보하면서 인간들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하지만 이 요새도시는 마치 다른 세계인 것처럼 평온할 뿐만 아니라 활기찼다. 사자의 군세를 막는 장벽의 존재와 마을 사람들이 열심히 산업을 발전시켜 생활을 이어나간 덕분이었다.

 요새도시로 돌아온 메리는 구출한 사람들과 함께 검역을 받고 그대로 레지스탕스 본부 건물에서 잡무를 처리했다.

 

 "메리, 조사부에서 연락이 왓다. 예의 '오빠'라는 사람을 찾았다고 한다."

 

 메리가 있는 곳으로 온 장년의 단원이 그렇게 알려주자 메리의 표정이 긴장으로 굳어졌다.

 

 "저, 정말인가요?!"

 

 메리에게는 전쟁의 혼란 속에서 헤어져 버린 소중한 '오빠'가 있었다. 그 사람은 전화에 휩싸인 미리가디아에서 메리가 있던 요양원의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이형의 존재들과 맞서다 행방불명이 되었다. 메리는 레지스탕스의 보호를 받은 후 그 '오빠'를 찾기 위해 구출 팀에 들어갔고 각지를 누볐다.

 

 "그래. 미리가디아의 연구소에 갇혀 있는 사람들 리스트에 네가 말한 '오빠'의 특징과 일치하는 인물이 있다고 한다."
 "연구소……."

 

 그 인물이 '오빠'라는 보장은 할 수 없었다.

 

 "그 연구소는 인간을 재료로 한 모종의 실험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기에 급히 구출 팀을 파견할 예정이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단원의 말에 메리는 곧바로 구출 팀에 합류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그래, 알았다. 출발은 내일 아침이니까 오늘은 이제 돌아가도 좋다. 서둘러 준비하거라."
 "네!"

 조사팀의 정보를 토대로 도착한 곳은 요새도시의 북동쪽에 있는, 예전에는 그란데레니아, 인페로다, 미리가디아의 국경이 맞닿았던 장소였다. 예전에는 3국의 교역을 담당하는 도시가 있었으나 미리가디아가 지배하고 나서는 그 기능을 상실하고 지금은 도시 전체가 연구시설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리고 미리가디아의 중요시설이라고 인식한 판데모니움은 지속적으로 전투인형을 이 도시로 파견해 끊임없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메리가 속한 레지스탕스는 전투인형과 이형의 전투가 격해진 틈을 타 연구시설로 돌입했다. 몇 번인가 이형과 교전을 벌였지만 바깥 전투에 분산된 탓인지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사람들이 갇혀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그 중에 '오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기에 메리는 낙담하면서 구출활동을 이어나갔다.

 

 "기…… 기다려 주게. 다른 방에 또 한 사람이 남아있어."

 

 마지막 사람이 미약한 목소리로 갇혀있는 사람이 아직 한 명 남았다고 알려주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 사람을 구출하기 위해 메리는 단원을 둘 데리고 그 방을 찾아 나섰다.

 그 방은 사람들이 갇혀 있는 방보다 더욱 안쪽에 있는 방이었다. 수술대 위에 한 남성이 구속되어 있었다.

 

 "오빠!"

 

 그 인물은 바로 메리가 줄곧 찾아다녔던 '오빠' 빌헬름이었다. 역시 빌헬름은 이 시설에 붙잡혀 있었던 것이었다. 복받치는 해후의 감정을 억누르고 메리는 수술대로 다가갔다. 그리고 빌헬름의 구속을 풀어주려고 했던 그 순간이었다.

 

 "아! 윽……."

 

 복부가 둔탁한 충격에 휩싸였다. 메리는 피로 물든 큰 가시 같은 무언가가 자신을 꿰뚫은 것을 목격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형이나 초인의 공격을 받아 자신이 여기서 죽게 될 것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함께 행동했던 두 명의 단원들도 심상치 않은 비명을 질렀다. 그들도 메리와 같이 몸을 꿰뚫린 것 같았다.

 빌헬름이 눈을 뜬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는 단단히 구속되어 팔 하나도 움직일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소리조차 지를 수 없이 구속된 그에게선 신음소리 같은 것밖에 들리지 않았다.

 

 ――미안해요――

 

 나오지 못한 목소리가 목구멍에서 맴돌았다. 메리의 가슴은 후회로 가득 찼다. 줄곧 찾아왔던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 구할 수 없었다.

 

 ――미안해요――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내보려고 했지만 그건 핏덩어리가 되어 빌헬름에게 쏟아질 뿐이었다.

 메리는 공허한 세계 속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많은 세계를 관찰하고 그 세계로 내려갈 수는 있었지만 그 세계에 간섭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걸 깨닫고 나서도 메리는 다양한 세계를 계속 관찰했다. 반드시 어딘가에 '메리'가 이루지 못한 행복한 세계가 존재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 세계를 발견하고 '메리'를 위해 관측하는 것만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확신했다.

 

 "자, 다음 세계를 관측해보죠."

 

 결정이 빛나면서 다시 여러 세계를 비췄다. 결정은 각각의 면에 다른 세계를 비추고 있었다. 그 안에서 '메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찾으려고 한 순간이었다. 다면체 중에 한 부분, 그러니까 하나의 세계가 하얗고 눈부신 빛에 감싸였다.
그리고 하얀 빛에 감싸인 면은 더 이상 세계를 비추지 않고 결정에서 사라져 버렸다.

 

 "또야……?"

 

 이 장소는 시간의 흐름이 애매하지만 메리의 감각으로 느끼는 최근, 이렇게 하얀 빛에 감싸여 소실하는 세계가 몇 개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어버린 세계는 과거를 관측할 수조차 없게 되었다. 여러 요인, 선택에 의해 분기가 나뉜 세계를 소멸시키는 이 빛을 메리는 무척 혐오했다. '메리'의 행복을 찾는 자신은 이 소실현상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지금까지 관측해온 세계는 확실히 행복한 결말을 맞았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그곳에도 누군가의 행복이나 결의, 각오가 존재했다. 그걸 부정하고 빼앗는 일이 존재해선 안 되었다.

 

 "다원 세계를 부정하고 싶어하는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 같네요."

 

 빛나는 결정 앞에서 메리는 조용히 화난 기색을 내비쳤다.

 - THE END -

 

 

'No.41~50 > 메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메리 R2 3398년 [현실]  (0) 2016.01.30
메리 R1 [꿈길]  (0) 2016.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