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살해 장면이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루드 R4 2835년 [서커스]
회계 담당자가 들어있는 마대 자루를 다 파묻은 루드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루드의 청각 기능이 누군가의 인기척을 포착했다. 소리가 나는 방향을 찾아내어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풀을 헤쳐나가는 소리와 함께 그 인기척은 멀어져갔다.
"성가시게 되어버렸군. 들켜버린 것 같은데."
"어떡할래?"
"우리에 대해서 떠벌리고 다니면 이번이랑 같은 짓을 하는 수밖에."
"어차피 인간이야. 이 녀석과 같은 꼴이 된다 해도 상관없어."
루드의 제안에 비레아는 즉답했다. 회계 담당자를 공격한 이후에 비레아는 눈에 띄게 과격한 발언이 늘었다. 긴 시간 동안 인간의 스트레스 해소 수단으로 이용된 탓인지 지금의 비레아는 인간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는 듯하였다.
"……그렇군."
"어떡할 거야?"
"일단 다른 곳에 다시 묻자. 날이 밝아 이곳을 다시 파내면 시체가 들킬지도 몰라."
"알겠어."
마대 자루를 다른 장소에 다시 묻은 후 서커스에 돌아온 루드는 그 후 회계 담당자가 관리하고 있던 금고를 찾아 주변 나무 아래에 묻었다. 이렇게 하면 회계 담당자가 금고를 가지고 야반도주를 한 것처럼 보일 것이었다. 오래된 기록에서 발견한 미스터리 연극의 한 구절이었다.
다음 날, 회계 담당자가 사라진 사건은 금고가 함께 없어져서인지 꽤 큰 소동이 되었다. 루드는 언제나 하던 대로 쇼에서 사용할 도구들을 손질하며 인간들의 모습을 관찰했다. 소란스러워진 서커스의 구성원들. 사태가 사태인 만큼 단장 역시 오랜만에 텐트에서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단장은 브라우와 노움에게 부축받으며 겨우 걸을 수 있는 상태였고 안색 역시 좋지 않아 보였다.
"단장, 회계 담당 자식이―"
"다 들었다. 녀석은 도망친 거야. 우리 전 재산을 다 가지고. 망할 자식. 하지만 이미 다한 건 어쩔 수 없지. 우리는 여기에 남아 서커스를 계속한다."
"네!? 단장,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동하는 데도 돈이 들어. 안 그래?"
금고에는 서커스의 운영자금이 들어있었다. 서커스의 전재산을 도둑맞았다면 이동에 필요한 자금은 이 지역에 남아 버는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지만……."
"알았으면 빨리 공연 준비나 하러 가. 하루라도 빨리 이동할 수 있게 돈을 벌어야 해."
단장은 그렇게만 말하고 텐트로 돌아가려 했다.
"단장, 기다려 주십시오!"
마크가 단장을 불러세웠다. 마크의 얼굴은 새파래져 있었고 무언가 알고 있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어젯밤에 루드와 비레아가 저 숲에 뭔가를 묻고 있는 걸 봤어요!"
마크는 그렇게 말하고 루드를 가리켰다. 다른 사람들은 마크를 쌀쌀맞게 바라보았다.
"어이 마크, 농담은 그만하지 그래. 저 녀석들은 우리의 명령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
"또 술 퍼마시고 꿈이라도 꾼 모양이군. 저 녀석들은 꼭두각시다. 그런 짓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술을 마신 건 맞지만 제 눈으로 봤습니다! 꿈이 아니에요!"
마크는 단장을 붙잡고 늘어졌다.
"이 이상 소란 피우지 마라. 나는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야 한다. 너도 빨리 쇼나 준비해."
단장은 마크의 말을 일축하고 노움과 브라우에게 부축받으며 텐트로 돌아갔다.
"단장……."
그리고 이틀이 지났다. 마크는 루드가 묻은 마대 자루를 찾기 위해 이틀간 숲을 헤맸다. 마크가 마대 자루를 찾으려 할 것이라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마대 자루는 처음과 다른 곳에 묻어 놓았고 파낸 흔적도 낙엽 같은 것으로 덮어서 숨겨놓았다. 일단은 쉽게 발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단장은 여전히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안색을 하고 있었고 호전될 때까지는 이 지역에서 서커스를 계속할 것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이제 수익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대중들은 서커스에 싫증이 나 있었기 때문에 이 이상 이 지역에서 돈을 버는 것은 불가능했다. 좀 더 큰 번화가로 가면 곧 큰돈을 벌 수 있을 테고 병원에서 단장을 치료할 수도 있다. 그렇게 제안한 단원들도 있었지만, 단장은 자신의 몸 상태를 이유로 이 지역에 머무는 것을 선택했다.
"이제 단장이랑은 일 못 하겠어. 대체 뭘 생각하고 있는 거야!"
"나는 저런 단장이 이끄는 이 서커스랑 같이 망하고 싶은 생각 없어!"
단장의 태도에 참지 못한 도구 담당자와 복화술사는 서커스를 뛰쳐나갔다. 단장 이외에 남은 사람은 마크와 그의 사제관계에 있었던 정비사 데이브였다. 데이브는 심약한 성격의 남자로 원래 도구 담당자와 함께 떠날 생각이었지만 마크의 협박 비슷한 설득에 남기로 한 인물이었다. 오토마타에 대해 큰 불만을 품고 있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마크에게 무언가 들은 모양인지 정비 같은 것은 하고 있지 않았다.
단원 중 인간이 겨우 둘뿐이라는 것. 오토마타들이 뭔가 꾸미고 있는 것 같은데도 그것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 몸 상태가 안 좋다는 핑계로 상황을 개선하려 하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 단장. 그런 상황에 마크의 초조함은 쌓여만 갔고 그렇게 쌓인 스트레스를 오토마타들에게 화풀이하는 것으로 해소하고 있었다.
"젠장, 죄다 맘에 안 들어. 내가 이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중얼중얼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주변에 있는 오토마타를 전기 충격봉으로 때리고 발로 찬다. 그 모습이 흡사 폭군을 연상시켰지만 이제 이 서커스 안에서 그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크 씨, 이제 그만 해요. 우리도 슬슬 도망쳐야 할 때예요. 계속 여기에 있다가는 어떻게 될지……."
"뭐? 네 녀석이 언제부터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게 된 거지? 단장 놈은 나에게 빚을 졌어! 그걸 돌려받기 전까지는 여기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고!"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며 마크는 다시 오토마타를 때리기 시작했다. 안절부절 못 하는 데이브.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루드는 늘 하던 업무를 수행하면서 관찰하고 있었다.
그날 밤, 단장의 텐트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루드와 메렌이 급히 달려 와보니 단장의 텐트 안에서 마크가 노움의 위에 올라타 있었다.
"이 자식! 역시 네놈이 단장을 저렇게 만들었었어!"
"마……크 씨…… 이건……."
"변명 따위 필요 없어!"
"아, 아니에……."
"그럼 이건 뭔데? 엉!? 이 고철이 단장이란 말이냐?"
마크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침대에 누워 있는 단장이 있었다. 하지만 단장의 복부에는 도저히 인간의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코드 같은 기계 부품들이 노출되어 있었다.
"이, 이건……."
루드는 메렌을 바라보았다. 메렌도 놀란 듯이 단장을 보고 있었다. 루드가 비레아와 함께 회계 담당자를 붇어버린 건 단장의 모습이 이상해진 것이 큰 이유였다. 그렇다면 대체 처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가. 루드의 연산장치가 빠른 속도로 사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마크는 다시 격양된 모습으로 노움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 욕지거리에 루드는 연산을 중지했다. 노움의 괴로운 듯한 신음 소리로 보아 그가 목을 졸리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생각따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노움이 죽는다. 순간적으로 그렇게 판단한 루드는 가까이에 있던 렌치를 쥐고 마크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그것은 비레아가 회계 담당자에게 했던 짓과 비슷했다. 인간은 머리에 강한 충격을 받으면 움직일 수 없게 된다. 루드는 그걸 학습했었다. 학습한 것을 실천에 옮긴다. 루드는 단장을 '정비'하고 있었을 렌치로 마크의 머리를 몇 번이고 내리쳤다.
'으억……!"
신음소리를 내며 움직이지 않게 된 마크. 루드는 서둘러 그를 노움으로부터 떼어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메렌이 노움을 안아 올려 상처가 없는지 빠르게 체크했다. 노움은 잠시 멍하니 있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믿을 수 없다는 누으로 루드를 보았다.
"루드……."
"역시 노움 이외의 인간은 악이야. 이 녀석도 회계 담당자처럼 어딘가에 묻어버려야 해."
"그런……."
"할 수 없어. 이렇게 된 이상 숨길 수밖에 없다고!"
루드는 강한 어조로 그렇게 내뱉고는 움직이지 않는 마크를 질질 끌면서 단장의 텐트 밖으로 옮겼다.
그러던 중, 소동이 일어난 것을 눈치채고 단장의 텐트로 다가온 데이브와 우연히 마주쳤다.
"히익!"
피투성이가 된 마크를 옮기는 루드의 모습을 본 데이브는 숨을 삼키는 듯한 비명과 함께 뒷걸음칠 쳤다. 자신도 저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의 감정이 터져 나왔다.
"사, 살려, 살려줘!"
루드는 마크를 내려놓고 용서를 구하는 데이브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 남자는 마크처럼 폭력을 휘두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오토마타를 구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 남자를 어떻게 해야 할까. 루드는 생각했다.
"히, 히이이이이익!"
정신착란이라도 일으킨 건지, 데이브는 비명을 지르며 주변에 있던 몽둥이를 주워 루드를 향해 휘둘렀다. 루드는 침착하게 데이브의 발을 걸었다. 데이브는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 역시 노움 이외의 인간은 악이다 -
그것이 결론이었다. 루드는 쓰러진 데이브의 머리에 마크의 피가 묻은 렌치를 몇번이고 몇번이고 내리쳤다.
"아악! 억! 으윽!"
내리칠 때마다 데이브는 비명을 질렀지만 네 번, 다섯 번 가량 때리고 나니 그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묻어버려야 할 것이 늘었다. 그저 그렇게만 생각하며 루드는 움직이지 못하게 된 데이브와 마크를 바라보았다.
"루드……. 미안, 이런 일을 시키려고 너를 고쳐준 건 아닌데……."
노움이 자책하는 표정으로 다가왔다. 비음이 섞인 그 목소리로 보아 그가 울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괜찮아. 인간은 너에게 위해를 가했어. 그런 녀석들은 이렇게 되어도 싸."
노움이 한순간 놀란 모습으로 루드를 보았다. 그의 그런 표정에 루드는 마음속이 무거워지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미리 프로그래밍된 감정과는 다른 무언가가 루드를 움직이게 했다.
"마크와 데이브를 묻고 나면 이 마을에서 떠나자. 이제 이곳에 머물 수는 없어."
지극히 당연한 말이었다.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고는 하지만 머지않아 서커스가 수상쩍다는 게 들통날 것이다. 인간이 남지 않은 서커스가 있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분명 무슨 이링 일어났는지 조사를 받을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그들은 이 마을에서 사라져야만 했다.
인간이 남지 않은 서커스에서는 오토마타들이 이동을 준비했다. 모두 노움을 통해 자신의 의지르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서커스는 큰 숲 깊은 곳으로 이동하였다. 설령 무슨 일이 일어나도 숲이라면 모습을 감추기 쉬울 것이라는 게 함께 머리를 맞대 내린 결론이었다.
"나는 인간에게 학대받는 오토마타들을 구하고 싶어. 수많은 마을에서 다양한 오토나마타들을 구하고 싶어."
이동하던 도중 노움은 비레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말했다.
"인간은 무서운 존재야. 그런 녀석들로부터 너희들을 구하는 게 내 역할인 거야. 분명……."
혼잣말이었지만 서커스의 일원 모두가 그 말에 동의했다. 그는 오토마타들의 구세주일지도 모른다. 루드의 사고회로에 그 한 마디가 떠올랐다.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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