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드 R1 2835년 [동물조련사]
시장의 인파 한 가운데에 루드와 곰 형태의 자동인형인 오우란이 있었다. 동물조련사인 루드와 곰 형태 자동인형인 오우란, 이 한 사람과 한 마리 동물의 역할은 이번에 새로 방문한 마을에서 서커스의 홍보를 하는 것이었다.
“포춘 서커스단이 찾아왔다! 오늘 밤부터 공연을 시작한다!”
홍보용으로 제작된 화려한 의상을 입은 루드와 커다란 몸집을 지닌 곰 형태 자동인형은 무척이나 눈에 띈다. 마을에서 뛰어 놀던 아이들까지 몰려들어서 상당한 규모의 군중이 모여있었다. 오우란은 홍보의 일환으로 풍선을 나눠주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아이들에게 둘러 싸여 있었다.
“곰이다! 엄청 크네!”
“근데 이 녀석, 무늬가 왠지 이상해.”
오우란은 찰싹 달라붙어 모피를 만져대는 아이들의 무리에게 둘러싸여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에잇, 놓아라. 일반시민 녀석들아. 나는 사자보다 위대하다.”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이 녀석아.”
아이들은 오우란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덤벼들 듯한 기세로 오우란의 귀를 잡아 당겼다.
“음, 아귀 같은 녀석들. 이 몸은 시대를 잘 타고났더라면 자이언트 팬더라고 불리며 모든 이들의 추앙을 받으며 우아하게 살았을 것이다!”
오우란은 하얀 모피에 눈과 귀, 그리고 몸의 일부분에 검은 무늬가 있는 특이한 몸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자이언트 팬더님」이라고 부르고, 거만한 태도를 보이며 아이들의 주목을 끌고 있었다. 아이들은 오우란의 말에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거짓말쟁이 녀석! 얼룩무늬 곰이잖아. 게다가 단순한 흑백무늬야.”
“촌스러워.”
“맞아, 맞아.”
아이들이 저마다 떠들어대는 말을 듣고 오우란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
“아아. 예전에는 그저 우아하게 뒹굴기만 해도 모두에게 사랑 받았었는데.”
오우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어, 이 녀석 삐쳤다.”
“설마 우는거야?”
“완전 웃긴다.”
아이들은 점점 더 오우란을 모질게 대했다. 그 중에는 발길질을 해대는 아이도 있었다.
“오우란을 너무 괴롭히지마. 오우란은 아무런 재주도 없거든. 하지만 서커스에는 멋진 재주를 부리는 동물들이 나올거야.”
루드는 코끼리가 재주를 부리는 그림이 그려진 서커스의 홍보 전단을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아빠, 엄마하고 같이 보러오렴! 사자와 코끼리가 재주를 부리는 쇼를 볼 수 있어!”
“대단하다! 정말이야?”
“사자 같은 동물도 만져볼 수 있어!?”
“만져보는 건 무리일지도 몰라. 하지만 거기 있는 오우란은 맘대로 만져도 괜찮아! 그게 오우란이 맡은 역할이니까.”
“신난다!”
“루드, 이봐! 무슨 말을 하는 악! ...그만둬! 모피가!”
아이들이 잇달아 오우란에게 밀려든다. 오우란의 모피 무늬는 아이들을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다.
“하하하, 인기가 많아서 좋겠네. 오우란.”
“에잇, 그만두지 못할까!”
몰려드는 아이들과 눈물을 머금은 오우란이 뒤엉키는 모습이 주변의 어른들도 웃음 짓게 만든다.
서커스를 흥행시키기 위한 홍보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여러 나라와 마을 돌면서 서커스의 흥행을 위한 홍보를 할 때마다 반복되는 행동이었다. 어느 마을을 가더라도 오우란의 모습과 캐릭터는 홍보에 안성맞춤이었다.
그 날 밤, 루드는 동물 쇼를 하기 위해 무대 옆쪽에서 자신의 출연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는 흥을 돋우기 위한 오프닝 공연으로 메렌의 카드 마술 쇼가 막 시작된 참이었다. 하지만 동물 쇼에 제일 먼저 출연할 코끼리 형태의 자동인형이 작동하지 않았다. 몇 번이나 전원을 다시 켜보았지만 코끼리 형태의 자동인형은 작동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안 되겠어. 고철덩어리가 하필이면 지금 작동이 안되고 난리야.”
마트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 코끼리 형태의 자동인형을 냅다 차버렸다. 이 서커스에 있는 자동인형 중에서도 상당히 대형에 속하고, 게다가 무겁기까지 한 코끼리는 마트가 차버린 정도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군. 어이, 아무나 가서 애송이를 불러 와라.”
잠시 후, 마크가 불렀던 소년이 공구를 들고 나타났다. 소년은 이전에 공연을 했던 지역에서 단장이 데려온 고아였다. 이름이 없다고 했었지만, 누군가 이름을 붙여준 모양인지 최근에는 노움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노움은 뛰어난 솜씨로 전원 커버를 분리하고 내부를 검사하더니,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원 주변에 이상은 없습니다. 자세한 것은 분해해서 검사해보지 않는 한……”
“칫, 낡아빠진 고철덩어리 같으니라고. 단장님 어떻게 하실래요?”
“어? ……어이, 오우란, 비레아. 너희들이 이 녀석 대신에 쇼에 나가라.”
갑작스러운 명령이었다. 하지만 그 명령은 막간의 콩트를 위해 대기하고 있던 오우란과 비레아가 때마침 단장의 눈에 뜨였기 때문일 것이다. 루드는 그렇게 생각했다.
“루드, 제일 처음에 하기로 되어있던 공연 순서 목록을 곰 쇼로 바꿔라. 평소처럼만 해라. 알겠지?”
“알겠습니다.”
단장이 지시를 내렸다. 오우란이 재주를 부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관심을 끄는 역할이 어울렸기 때문에, 홍보나 감초 역할을 프로그래밍 해두었을 뿐이었다.
“단장님, 어째서 비레아까지 필요한 건가요? 곰 쇼로 변경하면 오우란만 있으면 될 텐데……”
“응? 그건 말이지. 홍보할 때는 메인 이벤트가 코끼리 쇼였잖아. 그런데 갑자기 취소했으니까 어느 정도 서비스라도 하지 않으면 내일 흥행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되거든.”
“저 고철덩어리가 그런 큰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요?”
“거기까지 해주리라는 기대는 별로 하지 않아. 루드의 채찍을 피해 이리저리 뒹굴면서 웃길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그런 내용의 대화가 루드의 귀에 들렸다.
“자, 다녀와라. 루드.”
루드는 단장의 신호에 따라 오우란과 비레아를 데리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 홍보 전단에 그려져 있는 맹수나 코끼리가 아니라, 이상한 무늬의 곰과 등이 굽은 광대 복장의 자동인형이 나왔다. 갑자기 객석이 소란스러워진다.
“자, 오늘은 특별히 공연 내용을 변경하여 스폐셜 쇼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전설의 자이언트 팬더 오우란!”
스포트라이트가 오우란을 비춘다.
“그는 오늘을 위해서 많은 재주를 연습했습니다. 평소에는 구제불능이었던 그에게 따뜻한 성원의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오우란의 보조를 담당할 비레아!”
이번에는 등이 굽고 볼썽사나운 작은 체구의 남자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그는 오우란과 함께 새로운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루드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말솜씨와 기묘한 자동인형 출연자인 둘을 향한 관객의 반응은 좋은 편이었다. 루드는 정해진 공연 순서에 따라 채찍을 휘두르고 오우란을 향해 후프를 던진다. 오우란은 후프를 목으로 어설프게 받아서 빙글빙글 돌린 후, 비레아에게 내던졌다. 동시에 객석에서 관객들이 환성을 질렀다. 비레아는 후프를 손으로 받더니, 후프를 줄넘기처럼 사용해서 객석 바로 앞에서 펄쩍펄쩍 뛰고 있었다. 줄넘기를 하던 도중에 마치 무언가에 발이 걸린 것처럼 넘어지는 바람에 튀어나온 후프가 통통 튕기면서 루드의 손으로 되돌아왔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비레아의 모습을 보고 웃음이 터져 나온 객석을 향해, 루드가 상황에 걸맞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후프 쇼가 끝난 후, 난쟁이들이 루드의 무릎 높이만한 커다란 공을 가지고 나왔다. 루드가 채찍으로 신호를 하자, 오우란이 공에 공굴리기 재주를 펼친다. 관객들의 성대한 박수소리에 기분이 좋아진 오우란이 가슴을 내밀며 뽐냈다. 그 상태에서 비레아까지 공에 올라탄다. 비레아는 중심을 잡기가 위태로워 보이는 상황에서 능숙하게 오우란을 타고 기어오르더니, 오우란의 머리 꼭대기에 한 발로 서는 재주를 선보인다. 객석에서 더욱 더 큰 환성과 큰 박수가 터져 나온다. 오우란이 공에서 내려올 때, 오우란의 머리에서 굴러 떨어져버린 비레아의 모습이 다시 한번 웃음을 자아냈다. 무대 옆쪽에서 다른 동물이 난쟁이들과 함께 새로이 등장한다. 돌발적인 상황에서 펼쳐진 오우란과 비레아의 쇼가 막을 내렸다.
그 후에는 사자 형태나 호랑이 형태의 자동인형들이 펼치는 맹수들의 쇼가 이어졌다. 루드가 채찍과 조련봉을 사용해서 맹수를 조종한다. 전형적인 패턴의 쇼였지만, 맹수와 맹수를 조종하는 사람이라는 약동감 넘치는 조합은 무척이나 인기가 높았다. 아이들의 놀란 얼굴과 성대한 박수. 오늘 밤의 메인 이벤트였던 코끼리 쇼가 갑작스럽게 중지되긴 했으나 꽤나 만족할 만한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그것은 루드의 내부 평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경험이었다.
루드가 무사히 쇼를 끝마치고 무대 옆쪽으로 돌아왔다. 루드와 교대 하듯이 오우란과 비레아가 원래 역할인 콩트를 선보이기 위해서 무대로 올라간다.
“호오. 비레아 녀석, 꽤나 상태가 좋아 보이는데.”
“비레아뿐만 아니라 애송이가 수리한 자동인형들은 전부 상태가 좋아졌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대단한 녀석을 손에 넣었어. 마을을 떠날 때에 버리지 않길 잘했군.”
“정말 잘하셨습니다.”
단장과 마크가 쇼의 대기실에서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어이, 루드. 너도 다음에 애송이에게 검사를 받아봐라.”
“이게 바로 유지보수를 위한 점검이라는 거군. 하하하하!”
루드는 단장과 마크의 말을 뒤로하고 창고로 돌아갔다. 창고에는 작동이 되지 않는 코끼리의 정비를 하고 있는 노움이 있었다. 노움은 루드가 지나가는 것을 발견하고 루드를 바라보았다.
“너도 상태가 안 좋은 거니?”
“아닙니다. 특별한 문제는 없습니다.”
“그래?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면 바로 말해줘.”
후드에 가려진 부분이 어두웠기 때문에, 노움의 표정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루드에겐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는 노움의 얼굴이 보였다.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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