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해 장면이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레드그레이브 R3 2814년 [수사]
미아라고 불린 오토마타는 그라이바흐-현재는 센스레코드를 재생하고 있는 레드그레이브이기도 하다-의 목을 조르고 있는 동안에도 계속 웃고 있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고통이 레드그레이브의 뇌로 밀려들었다. 하지만 그런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레드그레이브의 마음속 깊은 곳에 존재하는 냉철한 판단력은 사건의 원인과 범행이 가능한 인물을 찾아내려고 하고 있었다.
“네가 누군지 알아.”
미아가 레드그레이브의 목을 조르면서 말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이 들리고 있었다.
“반드시 부숴버리겠어.”
레드그레이브는 시야가 새카맣게 변하는 것을 느끼며 의식을 잃었다.
레드그레이브가 의식을 회복한 모습을 보고 곁에 있던 마리넬라가 의사를 불렀다.
“다행이다, 의식이 돌아오셨군요.”
평소에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마리넬라의 목소리가 안도감으로 인해 약간 들떠있는 듯했다. 레드그레이브는 병실로 들어온 의사들에게 자신의 증상에 대해 물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하마터면 정신이 오염될 뻔 했습니다. 정상적이지 않은 데이터로 인해 과부하가 걸렸지만 안전장치가 간신히 제기능을 발휘해 주었습니다.”
의사는 모니터를 체크하면서 말했다.
“센스 레코드가 조작되어 있었던 것인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수사국에서 따로 보고드릴 것입니다.”
레드그레이브의 곁에 있던 마리넬라가 대답했다.
“내일 받으시게 될 검사에서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 않으면 집무에 복귀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의사가 펜으로 단말기를 조작하면서 보충 설명을 하듯이 말했다.
“하지만 정신건강에 후유증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한동안은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으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알았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의사들이 레드그레이브의 곁에서 떠난 후, 병실에는 마리넬라만이 남아있었다.
“지금 당장 수사관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가능한가?”
“네, 바로 대령하도록 하겠습니다.”
마리넬라는 들뜬 마음이 진정되었는지 평소의 모습을 되찾고 사무적인 어투로 말했다. 단말기를 조작하고 몇 분이 흐른 후, 수사국 소속의 인물이 병실의 메인 모니터에 나타났다. 모니터는 책임자인 테크노크라트와 두 사람의 수사관을 비추고 있었다. 두 사람의 수사관은 그라이바흐 저택의 재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담당 수사관으로 각자 렌톤, 브라우닝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수사가 변변치 못하여 이런 일이 생기게 된 점……”
둘 중에 연장자인 렌톤 수사관이 판에 박힌듯한 전형적인 사죄의 말을 전하려고 하자, 레드그레이브가 바로 렌톤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내가 듣고 싶은 것은 수사의 진척 상황뿐이다.”
그라이바흐는 자살처럼 보이도록 위장되었지만 살해당한 것이 분명했다.
“알겠습니다. 누군가가 기록된 데이터를 조작해서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다는 사실이 판명되었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진행된 전자수사부의 조사에서는 아직 유력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누가 그라이바흐를 죽인 것인지 알 수 있을만한 다른 단서는 없나?”
남매나 마찬가지이며 연인이기도 한 남자가 살해당했다. 이 사실 때문에 감정이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 그러나 레드그레이브는 자신의 감상과 집무에 대해 확실하게 공과 사를 구분하고 있었다. 레드그레이브는 뛰어난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살인사건에 대해서 커다란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재수사에 의해 저택 안의 파괴는 내부의 오토마타가 저지른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라이바흐는 오토마타에게 살해당한 것인가?”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나 수사국에서는 아직까지 자살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라이바흐씨는 오토마타의 권위자이기 때문에……”
늙고 쇠약해진 천재가 자신의 창조물을 이용해서 교묘하게 꾸며진 자살을 했다. 수사국에서는 그런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했다.
“그럴 리 없다. 오토마타의 배후에는 다른 누군가의 의지가 개입된 것이 분명하다.”
레드그레이브는 센스 레코드의 기억 속에서 만난 미아라는 여자는 그라이바흐가 만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하고 있었다.
“아, 네. 하지만 수사는 미리 결론을 내리고 진행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
렌톤의 이마에는 구슬 같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런 것쯤은 당연히 알고 있다. 하지만 나의 직감은 훈련과 기술을 통해 단련된 것이다.”
“네. 물론 그 사실은 충분히 잘 알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수사국의 요원은 통치국 최고위급 기관의 입장에서 보면 불면 날아갈듯한 지위에 불과했다. 렌톤 수사관은 이 자리에를 어떻게 모면하면 좋을지 궁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레드그레이브는 자기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위축된 모습으로 눈치를 보는 하층 계급의 직원들이 자꾸 보이는 행태를 혐오하고 있었다.
“수사의 과정은 하나도 빠짐없이 나에게 보고해주게.”
“알겠습니다. 계속해서 수사를 진행하겠습니다.”
렌톤 수사관이 보고하는 동안에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브라우닝 수사관은 경례와 함께 화면에서 사라졌다.
다음 날, 레드그레이브는 검사를 마치고 집무로 복귀하기 위해 이동하는 차 안에서 스쳐 지나가는 창 밖의 경치를 바라보며 그라이바흐의 기억을 곱씹어보고 있었다.
---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 그라이바흐는 완전한 창조성을 통해 오토마타를 완성시키고, 살인을 [창조]한 것일까?
--- 그리고, 자신의 작품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면 그것은 자살인 것일까?
오토마타는 지상 세계에 넘쳐날 정도로 많았다. 안정적인 노동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이 세계의 번영과 지속을 담당하고 있다. 오토마타가 수행하는 업무의 개선을 담당하고 있던 사람이 그라이바흐였다. 마치 지성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가능한 아름다운 그의 작품은 이상적인 노예로서 순식간에 전세계로 널리 퍼졌다.
하지만 그라이바흐는 그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지성이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고는 하나, 홀로그래프 영상으로 허공에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처럼 표현하는 일과 마찬가지로 그가 만든 오토마타의 지성도 만들어진 대로 움직이는 것에 불과했다. 인간처럼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거나, 자신의 의지로 목적을 창조하는 수준까지는 결국 도달하지 못했다.
“내 지성의 열등한 복제품에 불과할 뿐이야. 그것도 일부분만을 잘라낸 스냅사진 같은 것이지.”
그는 자신이 만든 오토마타의 정밀함에 대해 자조 섞인 말투로 그렇게 표현한 적이 있었다.
“레드그레이브님, 수사국에서 그라이바흐씨의 오토마타에 관한 조사에 대해 보고드릴 내용이 있다고 합니다.”
심사숙고를 하던 레드그레이브는 마리넬라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 상념에서 깨어났다.
“알았다. 연결해주게.”
스크린에 테크노크라트와 한 명의 수사관이 나타났다. 그들을 비추는 영상과는 별개로 오토마타의 식별번호와 소재지의 리스트가 비춰지고 있었다.
“그라이바흐씨가 제작한 후, 그의 저택에서 보유하고 있던 인간 형태 오토마타는 20기. 그 중에 16기가 완전히 부서진 상태로 발견되었고, 2기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D-2구역에 있는 미술관에 전시물로서 임대되어 있었기 때문에 무사했습니다.”
“남은 2기는 어떻게 되었나?”
“사건이 일어난 다음 날, 메르키오르씨가 소유자가 되기 위한 수속절차를 마쳤습니다.”
“메르키오르가? 그가 인수한 2기의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판명되었나?”
수사관의 입에서 메르키오르씨의 신병은 이미 억류해두었습니다. 현재 심문을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메르키오르씨가 착란상태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여서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내가 가도록 하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갑작스러운 예정 변경 소식에 옆에서 듣고 있던 마리넬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메르키오르씨의 건강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아 보이기 때문에, 그게…… 단지 번거롭기만 할 뿐이고 원하시는 결과를 얻지 못하실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메르키오르씨에게는 치료가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판단은 내가 한다. 지금 당장 그곳으로 가겠다.”
마리넬라는 아무 말없이 단말기를 조작하며 이 시간 이후의 예정에 대해 재조정하기 시작했다.
수십 년 만에 만난 메르키오르는 유전자 조작을 받은 게 분명한 고급 엔지니어임에도 불구하고 육체적으로 상당히 노쇠한 모습이었다. 아마도 연구에 몰두한 나머지 정기적으로 행해지는 의료적인 관리를 받지 않고 있던 모양이었다.
“오랜만이네.”
“여기서 내보내주지 않겠나? 연구가 점점 흥미로워지고 있어.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참을 수가 없어.”
잠시 얼굴을 돌려 레드그레이브를 바라보더니 바로 시선을 외면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얀 색의 취조실은 밝고 청결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압박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메르키오르는 구속당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전에 보았던 브라우닝 수사관과 다른 한 명의 수사관이 그의 양 옆에 서 있었다.
“자리를 비워주게.”
레드그레이브가 두 사람의 수사관에게 명령했다. 수사관들은 묵묵히 그 지시에 따랐다. 하얀 방에는 두 사람만이 남겨졌다.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모양이네. 정기적인 노화방지 프로그램을 착실하게 받아야지.”
레드그레이브가 친한 친구 같은 말투로 말했다.
“그런 것 따위 이젠 필요 없어. 조금만 더 연구를 지속하면 성과를 얻을 수 있어.”
“연구를 계속하고 싶으면 몸 상태에도 신경을 써야지.”
레드그레이브가 마치 격려하는 듯한 모습으로 메르키오르의 손을 감싸 쥐었다. 하얗고 아름다운 손이 볼썽사납게 혈관이 튀어나와 있는 손을 감쌌다. 그러나 메르키오르는 곧바로 손을 움츠리며 빼내버렸다.
“미래의 일 따윈 어찌되든 상관없어. 이제 곧 얻게 될 성과에 비하면 사소한 일이야.”
메르키오르는 고집스럽게 보이는 태도로 시선을 외면하고 있었다.
“그라이바흐가 죽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
메르키오르는 방의 구석진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알고 있어.”
“왜 죽었는지 알아?”
“그 일에 대해서는 수사관에게 몇 번이나 말했어. 아무것도 모른다고. 원래부터 자주 연락하는 사이도 아니었기 때문에, 꽤 오랫동안 그라이바흐와는 연락한 적도 없어.”
“그러면 어째서 그의 오토마타의 소유권이 당신에게 옮겨진 거지? 그것도 그가 죽은 후에 말이야.”
“몰라. 관심도 없어. 지금 당장 연구를 하러 돌아가야만 해. 지금 하려는 실험만 잘되면 인류는 변화를 맞이하게 될 거야.”
레드그레이브는 메르키오르의 말투나 태도를 냉정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그의 선천적인 성격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극단적으로 내성적인 성격이며 연구에 대한 열정으로 인생의 거의 대부분을 바치고 있는 남자. 대인 관계를 위한 의사소통에 필요한 기술은 어릴 때와 비교해서 조금도 진보하지 않았다.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고 하고 싶은 일만 요구한다.
“그렇다면 당신을 함정에 빠트리려는 사람이 있단 이야기야?”
레드그레이브는 그의 간절한 부탁을 무시하고 질문했다.
“그건 수사관이 조사해야 할 사항이야. 관심 없어. 지금은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시점이라고. 멍청한 수사관에게 아무리 설명해도 같은 일이 반복될 뿐이야. 무엇이 중요한지 우선순위를 모른다고!”
“당신에게 연구가 소중한 것처럼 수사관에게는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해.”
“중요성의 무게가 달라! 고작 한 사람이 죽었을 뿐인데……”
메르키오르는 현재 자신의 연구와 지금 진행되고 있는 수사의 가치에 대한 차이를 끊임없이 혼잣말처럼 떠들어대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노인이 착란상태를 일으킨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레드그레이브는 메르키오르가 떠들어대는 내용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알았어. 당신을 내보내라고 명령할게.”
“현명한 판단이야.”
“단, 조건이 있어. 나는 그라이바흐를 죽인 범인을 알고 싶고, 그 범인을 찾기 위한 단서가 당신일 거라고 여기고 있어.”
“흠.”
“범인은 그라이바흐를 죽이고 나를 부숴버리겠다고 말했어. 또한 당신에게 수사의 초점이 맞춰지도록 꾸몄어.”
“그래서?”
“나는 당신이 걱정돼. 함께 자란 친구잖아. 그러니까 호위를 붙이게 해줘. 그게 조건이야.”
“연구의 방해는 하지 않겠지?”
“그래.”
“알았어. 마음대로 해.”
“메르키오르를 돌려보내. 단, 감시에 소홀함이 없도록 주의해라. 그리고 낱낱이 보고해라.”
레드그레이브는 취조실을 나간 후, 수사국의 주임에게 그렇게 명령하고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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