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해 장면이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레드그레이브 R2 2814년 [기록]
레드그레이브는 그라이바흐의 저택에 있었다. 세련된 가구와 화창한 햇살이 비치는 그라이바흐의 방은 예전 기억과 변함이 없었다. 큰 방의 벽감에는 그라이바흐가 작업한 수많은 ‘작품’이 장식되어 있다. 현실에 존재하는 동물이나 상상 속의 괴물, 요정 등을 본뜬 오토마타가 포즈를 취한 상태에서 장식되어 있었다. 그것은 그라이바흐의 작품 카탈로그와도 같았다.
레드그레이브는 그라이바흐의 작품들을 하나씩 천천히 바라보았다. 그라이바흐의 인생이 새겨져 있었다. 원래 레드그레이브는 그리 감상적인 인간은 아니었지만, 움직이지 않은 인형들을 보고 있다 보니 약간의 쓸쓸함이 느껴졌다. 완벽하게만 보였던 자신들의 인생도 언젠가는 끝나 움직이지 않는 인형들처럼 조용히 사라져 갈 것이라고.
방을 관찰하면서 장식된 인형 중에 기묘한 공백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크게 만들어진 공간에는 이곳에 장식될 예정의 오토마타가 있었던 듯하다. ‘아마 그라이바흐가 마지막으로 작업했던 작품이겠군’ 하고 생각했다.
레드그레이브는 안쪽에 있는 그라이바흐의 연구실로 향했다. 공작기계가 배치된 방은 그의 작업실이라 할 만했다. 기계류가 놓여 있어도 그라이바흐의 미적 감각으로 정리된 방에서는 일종의 평온함이 느껴졌다. 방에 들어가 바로 오른쪽 안을 보니 기묘한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조명기구에 늘어뜨려진 끈에 매달린 남자의 시체였다. 머리카락은 산발이었고, 얼굴에는 주름이 새겨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아도 그것이 그라이바흐임을 알 수 있었다.
“주검은 지워주게.”
레드그레이브가 말하자 그라이바흐의 주검은 그 공간에서 사라졌다. 레드그레이브는 치안관리국 수사과의 데이터에 액세스하고 있었다. 사건, 사고가 일어나면 모든 증거는 치안관리국의 데이터베이스에 고정밀 3차원 데이터로 보존된다. 일단 전자화된 증거는 영원히 저장되므로, 다시 검증하기에도 용이하다. 레드그레이브는 업무 중에 시간을 내어 그라이바흐가 발견된 당시의 데이터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주검의 데이터를 지운 후, 레드그레이브는 연구실 여기저기를 돌아보았다. 모든 공작기계에는 공예품 같은 조각이 새겨져 있었고, 우아하게 완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아한 공작기계 주변에 부품이나 작품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모든 것이 정리, 처분된 듯했다. 레드그레이브는 이것이 그라이바흐 나름의 미학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책상 옆에 있는 서가에는 젊은 시절 자신과 그라이바흐가 찍혀있는 오래된 사진이 장식되어 있었다. 두 사람이 예술 아카데미가 세운 중앙가극장의 첫날 개관식에 참석했을 때의 모습이었다. 기자들을 상대로 지은 미소이긴 했지만, 젊은 두 사람은 아주 행복해 보였다. 손에 잡힐 듯 팔을 뻗쳐 보았지만, 어차피 데이터에 불과하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포기했다.
“레드그레이브님, 홍보국과의 회의 시간입니다.”
방안에 음성이 들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레드그레이브의 청각에 직접 전달된 것이었다.
“알겠다. 돌아간다.”
레드그레이브는 치안관리국의 데이터에서 로그 오프한 뒤, 집무실에서 눈을 떴다. 집무실에는 비서관인 마리넬라가 있었다. 그녀는 최근에 부임한 젊은 정책담당 엔지니어다. 레드그레이브와 마찬가지로 특별히 조정된 테크노크라트이며 매우 유능했다. 제복을 입고 있긴 했지만, 아직 앳돼 보였다.
“데이터의 액세스권을 반환하시겠습니까?”
“그렇게 해주게나.”
레드그레이브는 감상에서 돌아와 업무로 복귀했다.
거실 반대편 스크린에 영상이 표시되자 홍보국의 기술관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간단하게 인사한 후, 레드그레이브에게 회의의 주제를 설명했다.
“이것이 현재 각 통치 섹션의 잠재욕구 그래프입니다.”
홍보담당 기술관이 지도와 컬러풀한 그래프를 화면에 표시한다.
“현재의 잠재욕구를 조합했을 때 각 지역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5년 치의 시뮬레이션 결과입니다.”
화면이 전환되어 각 지역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사상이 차례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폭동, 분쟁 등의 폭력에 의한 소란, 종교나 마약 등 문화적인 문란 등이 색으로 구분되어 각 지역에서 깜박였다.
“현재의 시책을 지속할 때 일어날 수 있는 문화적인 문제는 이러한 형태로……”
“S-1과 O-4 지역의 당파성 허용계수 값을 산출해보게.”
레드그레이브는 기술관의 설명을 끊고, 정보를 전환하도록 명령했다. 각 지역은 기호로 불리고 있다. 통치기구는 시민을 어디까지나 숫자로만 보고 있다. 그들의 욕구를 살피고 그에 맞는 시책을 실시한다. 시민에게 불안감이 발생하면 치안대책이나 문화적인 자극을 주고, 퇴폐적인 문화가 발생하면 위협 -범죄 조직이나 질병, 단, 컨트롤할 수 있는 것- 을 공급했다.
레드그레이브의 업무는 엔지니어가 꿈꾸는 정치 시스템의 진수였다. 엔지니어가 생각하는 인간의 번영과 진보, 지속 가능한 생활, 이러한 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많은 변수를 조합하여 계산하는 역할. 레드그레이브는 그러한 업무를 진행했다. 레드그레이브의 두뇌는 이러한 용도를 위한 전용 생체컴퓨터라고 할 수 있다.
홍보국과의 회의를 마치고 마리넬라에게 내일 일정의 변경사항을 전했다.
“내일 잠깐 개인적인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따라올 필요는 없다.”
그라이바흐의 저택에 가보기로 했다. 아직 감정의 응어리가 남아있었다. 일단 마음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잘 알겠습니다.”
레드그레이브가 직접 그라이바흐의 저택에 들어가자 금세 수사기록과의 차이점을 감지했다. 방은 어두운 데다가 어지럽혀져 있었다. 장식되어 있던 오토마타들도 여기저기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폐허처럼 돼버린 저택을 걸으며 연구실로 향했다. 이쪽은 더욱더 심하게 손상되어 있었다. 레드그레이브는 휴대단말기를 사용해서 마리넬라를 연결했다.
“지금 그라이바흐의 저택에 와 있다. 치안관리국의 데이터로 사건 후 이곳이 어지럽혀지지는 않았는지 확인해 주게나.”
레드그레이브는 연락을 취하면서 그라이바흐의 서가에 장식되었던 사진을 확인했다. 사진은 기록과 같은 장소에 장식되어 있었다. 레드그레이브는 그 사진을 손에 들고 저택에서 나왔다.
“그라이바흐 님의 저택이 어지럽혀졌다는 정보는 없습니다. 현재 수사원이 그쪽으로 가고 있다고 합니다.”
마리넬라의 통신이 전달되었다.
“알겠다.”
레드그레이브는 저택을 나와 통치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를 탔다.
“그라이바흐 저택 사건에 대해서입니다만, 침입자에 대한 기록은 없었습니다. 만일을 위해서 수사를 시행한다고 합니다.”
“그래……”
레드그레이브는 여전히 석연치 않았다. 갖고 온 사진은 책상의 작은 서랍에 잘 넣어두었다. 레드그레이브는 그라이바흐가 죽은 이유를 알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이해할만한 이유가 있다면 상관없었다. 레드그레이브가 알고 있는 그라이바흐는 자살을 선택할만한 성격이 아니었다. 레드그레이브는 자신의 직감을 매우 신뢰했다. 사람들을 이끌기 위해서 매일같이 마음속에 피어나는 의문이나 위화감을 세밀하게 관찰했던 그녀는 예민한 감각을 가진 관찰자였다.
“수사국의 요원과 연결해주게. 설명을 듣고 싶은 것이 있다.”
“네, 알겠습니다.”
레드그레이브는 그라이바흐의 센스 레코드(지각 기록)의 백업 본에 액세스하기로 했다. 수사국의 이야기를 들어봤지만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위 엔지니어인 테크노크라트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지각정보 -촉각, 청각, 시각, 후각, 미각, 뇌에 전해지는 모든 외부신호- 가 뇌에 내장된 칩에 기록되고 있다. 죽음을 무서워하는 자 중에는 매일같이 클론에 백업했던 정보를 로딩하는 경우도 있다.
레드그레이브도 백업용 클론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다지 꼼꼼하게 관리하지는 않았다. 사고나 질병 때문인 예상치 못한 죽음 자체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같은 기억과 유전적 소질을 가진 육체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시스템은 아주 유사한 다른 사람과 교체되는 것에 불과했다. 지금의 자신이 죽고 그와는 다른 ‘유사한’ 자신이 살아가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기란 어렵다.
이 센스 레코드도 그라이바흐의 유언대로라면 파기될 것이었다. 최후의 프라이버시라고도 할 수 있는 센스 레코드를 꺼낸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필요하다. 애초 이번 일이 자살이라고 보고되었기 때문이다. 엔지니어 사회에서 자살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의료와 클론 기술이 발전한 상급 사회에서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다. 그저, 왜 자살을 선택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이유가 하나라도 있다면 확인하고 싶었다.
“정말 액세스 하시겠습니까? 위험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라 별로 권해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것은 수사국 요원에게 시키면 되는 일입니다.”
마리넬라는 레드그레이브에게 재고를 요청하려 했으나, 레드그레이브로서는 이와 관련된 위험성 따위는 하찮은 일에 불과했다.
“위험사항은 충분히 알고 있다. 내가 궁금해하는 것은 수사국의 대답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알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한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다. 부탁한다.”
레드그레이브와 데이터 재생장치가 접속되어 그녀의 신경은 현실세계로부터 차단되었다. 타인의 지각을 재생해서 자신의 것으로 수용하는 느낌은 기묘하고 독특했다. 신호의 강도를 잘못 조정하면 현실감을 상실해 버린다. 일정한 간격으로 현실감을 체크하고 그 결과에 문제가 있다면 비서관인 마리넬라가 작업을 중단시킨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선을 파악할 수 없게 되는 ‘오염’이 일어나면 제정신으로는 있을 수 없게 된다.
“캘리브레이션 시퀀스, 시작합니다.”
화이트 노이즈가 머릿속에 영향을 준다. 눈앞에 수많은 색과 모양이 나타났다. 손끝에서 찌릿찌릿한 간지러움이 느껴진다. 무언가에 취한듯한 감각이 나타났지만, 점차 진정되었다. 오감의 정보, 내분비 기관의 차이를 흡수하고 지각을 ‘동기화’하기 위한 시퀀스가 종료되었다.
“그럼 세일리아스 그라이바흐 씨의 28140903의 데이터를 재생하겠습니다.”
그라이바흐의 마지막 하루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아침의 빛이다. 얼굴에 부드러운 햇살이 비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라이바흐의 어시스턴트로 보이는 젊은 여자의 소리가 난다. 마치 꿈속에 있는 듯 했지만, 지각은 완전히 자신의 것이었다. 완전히 자기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것이지만, 자신의 의사나 생각이 몸에 적응되지 않는다. 마치 움직이는 감옥에 갇힌 듯한 느낌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마스터.”
젊은 여자가 노래를 흥얼거리듯 말을 걸어온다. 이 여자는 인간이 아니겠지. 너무나 완벽한 외모가 그라이바흐의 오토마타임을 증명하고 있다.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고마워, 미아. 참, 워켄에게 어젯밤의 실험 결과를 보고하라고 전해주지 않겠나?”
머릿속을 통해서 전해지는 그라이바흐의 목소리는 평소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톤이 낮았다.
“알겠습니다.”
침대에서 일어나 세면대로 가서 세수한다. 얼굴에 닿는 차가운 물의 온도조차 완벽하게 재현되고 있다. 가운을 걸친 채로 아침을 먹는다. 벽에 비치는 정보 단말기의 날짜와 시각은 분명히 그라이바흐가 죽은 날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상하다. 이렇게 안정된 상황에서 갑자기 자살을 선택했단 말인가?
“마스터, 뭔가 걱정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다.”
미아라고 불린 오토마타는 기묘한 질문을 했다. 그라이바흐는 식사를 하면서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마스터, 워켄은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만.”
“상관없어. 나중에 연구실로 오라고 말해 줘.”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미아는 그라이바흐가 식사를 마친 식기를 정리하고 자리를 떴다. 그 순간, 미아가 들고 있던 백자 식기가 바닥에 떨어져 깨졌다. 미아는 떨어뜨린 식기 조각을 주우려고도 하지 않고 그저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무슨 일인가?”
그라이바흐가 말했다.
“마스터, 당신은 정말로 마스터인가요?”
이쪽을 보지 않은 채 미아가 말했다.
“그래, 물론이지.”
기묘한 대화다.
“아니요. 당신은 마스터가 아닙니다.”
뒤돌아선 미아는 그라이바흐에게 덤벼들었다. 허우적거리며 떼어버리려고 했지만, 엄청난 힘으로 그라이바흐의 목을 조르기 시작한다. 동기화되어 있는 레드그레이브의 의식도 희미해져 간다.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미아라고 불리는 오토마타의 웃음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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