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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의식이 떠올랐다. 엡실론은 눈을 떴다.
은은한 빛이 시야를 덮었다. 엡실론은 젤리 형태의 물질로 채워진 침대에서 일어났다.
"기분은 어떠니? 우리 아들."
곧바로 엔지니어가 상태를 물어봤다.
"문제는 없다, ......고 생각한다."
엡실론은 숨을 돌리면서 엔지니어의 질문에 답했다.
각성 직후로 확실하다곤 할 수 없지만, 기분 변화나 신체 이상을 느끼진 않았다.
"다행이네. 논리적 사고를 보다 빠르고 수준 높게 할 수 있도록, 이번에는 두뇌를 좀 손봤거든."
"그런가."
"그리고, 신경계에 가벼운 손상을 발견해서 교환했단다. 저번에 채취한 철로 된 생명체의 신경계란다.
그거 정말 근사하더구나. 워낙 튼튼해서 말이지. 아, 그리고 말인데――"
엔지니어는 한 번 설명을 시작하면 엡실론이 이해하든 말든 상관 없이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
엔지니어의 설명을 흘려 들으며 엡실론을 몸을 일으키고, 적당히 구부렸다 폈다 했다.
뭔가 문제가 보인다면 엔지니어가 만족할 만큼 떠든 이후나, 물어볼 때 전하면 된다.
엔지니어가 설명해주던 것 중에서 중요한 것은 두뇌의 개조로 인한 변화지만, 그걸 제대로 알게 되는 건 분명 이계로 탐색을 떠났을 때일 것이다.
엔지니어는 정기적으로 엡실론의 신체 검사와 개조를 실시했다.
주된 내용은 채취한 생명체가 갖춘 월등한 기능을 엡실론 용으로 조정해서 집어넣는 것이었다.
그 범위는 발달한 신경계로의 교환부터 사고회로 강화까지 다양했다.
그렇게 엡실론에게 기존 생명체의 장점을 계승시켜서 어떤 환경에서도, 어떤 세계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궁극의 생명체로 만든다.
그것이 엔지니어의 목적이었다.
엔지니어로부터 좀 더 신체에 익숙해지라는 지시를 받은 엡실론은 가옥 안을 서성거렸다.
***
문득 뭔가 생각나서, 엔지니어가 마음에 들어하는 생명체를 보관하는 방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전에 채취해온, 엡실론의 모습과 닮은 생명체가 신경 쓰인 것이었다.
그때부터 몇차례 탐색에 나섰지만, 똑같은 생명체와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보관실에는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해된 지적 생명체가 불그스름한 액체에 담겨져 보관돼 있었다.
생명체의 머리는 엔지니어가 뭔가 조치를 해둔듯, 잠자는 듯한 표정으로 단정히 정돈되어 있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군."
자신의 토대가 된 생명체와 닮은 지적 생명체.
다시 한번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 뭔지 모를 감정을 떠올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한 행동이었다.
어째서인진 알 수 없지만, 엔지니어는 엡실론이 뭔가에 관심을 나타내거나, 감정을 표출하는 행위를 굉장히 기뻐했다.
그리고 떠올린 감정을 엔지니어에게 전하면, 엔지니어는 최대한의 애정표현과 함께 적절한 감정의 이름을 엡실론에게 정중히 설명하곤 했다.
***
하지만, 눈앞에 보관되어있는 생명체를 바라봐도 딱히 어떤 감정을 품는 일은 없었다.
신체에 대한 적응이 끝나자 엡실론은 새로운 생명체 채취를 위해 이계로 떠났다.
화려한 색깔의 이끼로 덮인 대지를 엡실론은 걸었다.
눈에 띈 이끼와 같은 색의 식물을 하나 잡아 뜯어냈다.
식물은 움직이는 생물처럼 꾸불대며 엡실론에게 엉겨 붙으려고 했다.
아무래도 이 식물은 나무나 바위 등 주변의 물체에 달라붙어 번식하는 식물 같다고 생각했다.
불쾌한 꿈틀거림을 보이는 식물을 작은 보관용기에 밀봉해서 짊어지고 있는 상자에 아무렇게나 넣었다.
느닷없이, 날카롭고 앙칼진 울음소리 같은 게 멀리서 들려왔다.
그 방향을 바라보자 네 개의 머리를 지닌 사족보행 생명체가 한가롭게 활보하고 있는 게 보였다.
일단 그 생명체가 있는 곳을 목표로 삼고, 도중에 눈에 띈 식물과 광물, 그리고 갑각으로 덮여있는 작은 생명체 등을 채취하면서 탐색을 계속했다.
잠시 이동을 계속하다 보니 나무 판자로 주위를 둘러싼 장소가 눈앞에 나타났다.
***
목재를 나무 판자로 가공할 수 있다는 것에서 고도의 지능을 지닌 생명체가 무리지어 살고 있음이 추측되었다.
지성이 없는 것보다 지성이 있는 것을 채취해오는 것을 엔지니어는 희망했다.
엡실론은 사족보행 생명체의 탐색을 중지하고 나무 판자 주위를 둘러보았다.
곧 출입구인 듯한 경계를 찾아 그 옆에 있던 바위의 틈새에 집음기를 설치했다.
그리고 떨어진 곳에 있는 바위의 그늘에 몸을 숨긴 채, 둘러쳐져 있는 이 나무 판자의 내부에 있는 생명체가 모습을 드러내길 기다리기로 했다.
잠시 기다리자 두 개의 머리를 지닌 이족보행 생명체가 무리지어 다가왔다.
멀리서 본 사족보행 생명체도 그렇고, 이 세계의 생명체는 여러 개의 머리를 갖고 있는 게 표준인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엡실론은 두 머리의 생명체가 어떤 행동과 말을 하는지 주의 깊게 살폈다.
***
두 머리의 생명체의 울음소리라고도, 말이라고도 할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있다가 집음기가 모은 소리가 번역기를 통해 엡실론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변환되어 들렸다.
"구슬을 옮겨왔다. 서둘러라, 놈들이 온다."
"알겠다."
번역기가 번역할 수 있다는 건 이 두 머리의 생명체는 체계화된 언어를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화의 내용에서 이 나무 판자로 둘러싸인 장소는 두 머리의 생명체에게 있어 요새 같은 곳이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지적 생명체와 빨리 조우할 수 있었던 점은 기뻤지만, '구슬', '놈들' 등 마음에 걸리는 말이 몇 가지 있었다. 뭔가에 쫓기고 있는 걸까.
엡실론은 좀 더 모습을 엿보기로 했다.
***
두 머리의 생명체가 말하는 '구슬'을 쫓아 뭔가 온다면, 머지 않아 소동이 일어난다.
그 소동을 틈타 두 머리의 생명체를 한 체만이라도 확보한다면 쓸데없는 소란을 일으키지 않고 끝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두 머리의 생명체가 무기를 갖고 나무 판자 너머에서 나왔다.
"어떻게든 구슬을 지켜라."
"수비를 굳혀라. 절대로 침입을 허용치 마라."
"이제, 다음은 없다."
"어떻게든 지킬 것이다!"
두 머리의 생명체의 대화가 번역기 너머로 들렸다. 상황은 상당히 절박한 것 같았다.
자신이 숨어있는 곳도 전장이 될 우려가 있었지만, 여차하면 차원을 건너면 될 뿐이었다.
지평선 너머에서 요란한 기동음이 들려왔다. 공중에 한 쌍의 날개가 돋친 상자 같은 게 날고 있었다.
기동음을 내고 있는 것은 그것일 것이었다.
***
시선을 지상 쪽으로 옮기자, 하늘을 나는 상자 같은 것의 앞에 그 금속질의 세계에서 조우한 이래로 만날 수 없었던, 자신의 기반이 된 것 같은 이족보행 생명체의 모습이 보였다.
그 생명체도 엔지니어와 마찬가지로 이세계를 건너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는가.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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