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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1~10/아이자크

아이자크 R1 3396년 [동족상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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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자크는 앉아있던 남자의 머리를 총으로 꿰뚫었다. 뒤통수를 뚫고 나온 총알은 피를 뿌렸고, 그 피는 붉은 안개가 되어 방 안을 떠돌았다. 아이자크가 총을 뽑는 동작은, 남자와 마주 보고 있던 에바리스트조차도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던 남자는, 자신은 시드로 장군이 보낸 사자라고 했다. 남자는 밤늦게 죄송하지만 급히 전할 말이 있다고 말했고, 군무원인 신분도 확실히 했기 때문에 무슨 내용인지 들어보기 위해서 방으로 불러들였다.

 “이 녀석, 널 죽일 생각이었어.”

 

 아이자크는 중얼거리면서 남자를 의자에서 끌어 내렸다. 상의를 풀어 헤쳐보니 고성능 폭약으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방을 통째로 날려버리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아이자크는 남자에게서 폭약을 떼어내고 뇌관을 뽑은 후, 책상 옆에 아무렇게나 내려놓았다.

 “언제 눈치챘어?”

 

 에바리스트가 의자에 앉은 채 묻는다. 시체와 폭약이 눈앞에 있었지만 침착한 말투였다.

 “냄새지. 그 합성 폭약의 냄새는 독특하거든.”

 

 에바리스트는 자세를 바꾸고 살짝 걸쳐 앉으며 책상에 놓인 폭약을 집어들고 살폈다. 아이자크는 암살자의 주머니를 뒤져보고 있다. 장관들의 저택이 밀집한 이 지역에서 폭탄 소동을 일으키려면 암살자를 보낸 자들도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위험한 이야기군.”
 “동감이야. 짐작 가는 곳은 있어?”
 “글쎄.”

 

 가벼운 농담이라도 하는 듯한 말투로 대답했다. 에바리스트는 아이자크와 단둘만 있을 때는 평소 모습보다 훨씬 스스럼없이 행동하고 있었다.

 “너무 많아서 곤란하다는 것도 고민이군.”

 

 아이자크도 남자의 몸을 수색하면서 농담처럼 말했다. 아이자크는 전부터 언젠가 이런 일이 생길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제국 내부에서 일어나는 분쟁은 점차 확산하고 있었다. 그 분쟁의 일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자신들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제국 내부 상황은 군부 중심의 정치 세력인 시드로 장군을 중심으로 한 확대파와 제국군 정치국의 칸두 장관과 유력 정치가들로 이뤄진 통제파로 분열되어 있었다. 끝없이 전란을 확산시키는 장군의 확대파에 대항하여, 루비오나와 화친 조약을 체결하자는 주장을 포함해 나라 내부의 안정을 우선시하는 통제파가 대립하고 있었다.

 그러나 표면적인 대립구도는 그렇게 보여도, 대부분이 <황혼의 시대>에 권력을 누리던 정치가들로 이뤄진 통제파가 전쟁이 이어짐에 따라 커진 군부 정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벌이는 순수한 권력 투쟁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한 대립구도 안에서 에바리스트는 시드로 장군 일파의 젊은 장교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광적으로 영토 확장에 집착하는 늙은 장군, 그 늙은 장군을 뒤에서 보좌하는 젊고 냉철한 에바리스트는 확대파의 쌍두마차와 같은 존재였다. 그 쌍두마차를 방해하는 자를 드러나지 않게 처리해온 사람이 아이자크였다. 먼저 통제파의 정치가 중에서 몇 명이 갑자기 실종되었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증거를 남기지 않고 처리한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통제파는 공포에 떨며 위축되었다. 정치판이라는 폐쇄된 세계에서 오랫동안 안주해온 정치가들은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확대파와 권력 투쟁을 할 때가 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에바리스트와 확대파는 언제나 상대가 행동을 취하기 전에 치명타를 입혔다. 그 전략은 적대국을 상대할 때도, 정적들을 상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이자크는 이 더러운 일에 대해서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에바리스트와 아이자크, 두 사람 모두 스스로 투쟁의 세계의 한복판으로 들어가길 원하고 있었다.

 특히 아이자크는 싸움터의 전율을 철저하게 즐기고 있었다. 아이자크에게는 군부 정치 세력 간의 싸움도, 전장에서 적대국의 병사와 싸우는 것도 어차피 <전쟁>이라는 점에서 똑같았다. 이제는 제국에서 시드로 장군을 필두로 한 확대파가 권세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통제파도 잠자코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다음 날, 아이자크는 에바리스트를 국경까지 호위하여 부대 호위병에게 인계해주고 관사로 돌아왔다. 어제 죽인 남자의 시체를 처리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 조직의 수장은 통제파의 인물이었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었다. 어설픈 정보를 넘겨주는 것은 좋은 대처방법이 아니었다. 귀찮은 작업이긴 하지만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관사로 돌아와 코트를 내려놓는 순간 폭발음과 함께 섬광에 휩싸였다. 아이자크는 자신을 <전환>시켰다. 아이자크의 주위로 빛과 연기가 천천히 생겨났다. 그 공간 안에서 연기 너머를 살펴보다가 재빠르게 상대와 마주 섰다. 

 아이자크는 총을 뽑았다. 중무장한 헌병 네 명이 연기 너머에서 방 안으로 연달아 들어온다. 아이자크는 일단 총을 내리고 시간을 평상시 감각으로 되돌렸다. 정치국의 제복을 입은 남자가 기관총을 겨누고 있는 헌병의 뒤에서 나타났다. 정치국원은 황제에게 충성을 다한다는 명목으로 제국군 내부에서 큰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로스바르드 대위, 같이 가 주셔야겠습니다.”

 

 남자가 무표정하게 말했다. 아주 당연하다는 태도였다.

 “가야 할 이유가 없는데.”

 “욕실의 시체와 폭약에 대한 건입니다. 대위님. 동행을 거부하실 수는 없습니다. 반역죄의 혐의가 있습니다. 심문을 받으시게 될 겁니다.”

 

 아이자크는 어제 있던 사건이 상대가 꾸민 시나리오의 일부라는 것을 바로 눈치챘다.

 “거부하겠다면?”

 “이것은 정치국의 결정입니다. 저항한다면 황제 폐하의 대한 반역으로 간주하겠습니다.”

 “반역이라…… 재미있군.”

 

 아이자크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뜻밖의 말에 무표정했던 정치국원의 얼굴에도 순간 당혹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아이자크는 세계를 전환시켰다. 세계가 순간적으로 어두워진 것처럼 느껴졌지만 바로 원래대로 돌아온다. 평범한 병사에게는 보이지 않는 세계로 돌입했다. 

 단숨에 거리를 좁혀 정치국원의 옆에 서서 팔을 움켜쥐고 비틀었다. 그리고 팔을 힘껏 잡아 뽑았다. 산 채로 몸이 찢어발겨 진 정치국원은 마치 인형처럼 힘없이 허공을 갈랐다. 정치국원의 몸이 무장한 헌병대와 세차게 부딪혔다. 헌병들에게는 순식간에 몸이 찢어발겨 진 정치국원밖에 보이지 않았다. 예기치 못한 사태에 헌병들의 지각 능력이 얼어붙었다. 

 압도적인 속도와 힘이었다. 시퍼런 칼날이 좁은 공간에서 번뜩이더니 또 다시 핏방울이 흩날렸다. 기관총을 쥐고 있던 헌병들의 팔이 차례차례 떨어져 내렸다. 마치 곤충의 팔다리를 떼어내며 노는 아이처럼 일부러 즉사하지 않도록 힘조절을 하며, 피의 축제에 헌병들을 제물로 바치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자크의 얼굴에는 여전히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몇 분이 지난 후, 아이자크는 피 웅덩이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피 웅덩이에 잠긴 남자들은 모두 숨이 끊어져 있었다. 끔찍하게 살해 당한 모습이었다. 

 아이자크는 욕실로 향했다. 그리고 어제 죽인 시체가 들어있는 욕조에 걸터앉아 정성스레 부츠에 묻은 피를 닦았다. 그러고 나서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밤이 왔다. 제도에 폭음이 울려 퍼진다. 에바리스트의 관사가 불타오르며 제도의 밤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공관이 많은 제도 중심부에서 일어난 폭발소동을 계기로 발생한 혼란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다음날 신문의 머리기사가 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칸두 장관이 의문의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대서특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