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리하 R2 3380년 [안개]
코어가 있는 중심지에 가까워지면서 안개가 짙어지자 코어 회수 부대의 보고가 빈번하게 들어온다.
이데리하가 소속된 E4소대와 B2소대는 다가오는 적대 생물들로부터 코르벳을 방어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중심지 만큼은 아니었지만 코르벳 주변에도 안개가 짙게 끼어 시야를 방해했기 때문에 주변 상황에 주의를 기울이고 경계하지 않으면 적대 생물의 공격을 쉬이 허용하게 될 것이었다. 적대생물은 사마귀 같은 모습을 하고 몸 전체가 젤리 같은 점액으로 뒤덮여 있었다. 거기에 안개에 적응이라도 한 듯 이 쪽의 움직임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았다. 회수부대로부터의 통신음, 엔지니어와 소대장이 지시를 내는 소리. 그런 여러 가지 소리가 난립하는 가운데 이데리하는 어썰트라이플로 견제 사격을 가했다. 남은 탄환 수에 주의하면서 다가오는 적대 생물이 코르벳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어썰트 라이플이 점액으로 뒤덮인 적대생물의 껍데기를 관통할 만한 화력을 지녔다는 게 다행이었다.
전투가 격해지면서 이데리하는 자신이 기묘한 감각에 휩싸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위의 안개가 자신에게 모여 움직임을 방해하는 그런 감각 이었다.
"뭐......지?"
하지만 더욱 격렬해지는 전투에 집중하기도 벅찼기 때문에 그런 감각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자신을 둘러싼 안개를 걷어내기 위해 이 데리하는 라이플을 계속 쏘아댔다.
"이 바보자식! 아스널 캐리어로 복귀해!"
"데이터를 수집해야만 해. 그럴 순 없어."
등 뒤에서 B2 소대 소속 프리드리히의 화난 목소리가 들린다. 그 거친 목소리에 보통 일이 아니란 걸 눈치챈 이데리하는 급히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그 곳에서는 E중대 소속 조사 기술관인 히 네크가 아스널캐리어에서 내려 전투 중인 대원들의 모습을 녹화하고 있었다.
"저 자식...!"
이데리하는 히네크의 모습을 보고 놀람 반, 분노 반인 상태로 말했다. 히네크는 직무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조사, 관찰'이라고 하며 전투를 하던 훈련을 하던 상관하지 않고 위험한 곳으로 달려간다. 이데리하를 포함한 E중대 입장에서 보면 솔직히 말해 귀찮고 민폐 덩어리에 불과했다. 벨킨에게 몇번이고 말해봤지만 관할이 다르다는 이유로 히네크의 행동을 문제 삼지 않았다.
"무슨 짓거리여! 여기는 전장이여! 아스널 캐리어로 돌아가!"
고향 말투가 나오는 것에 아랑곳않고 이데리하는 히네크에게 화를 낸다. 위기의식이 부족한 엔지니어를 보호하는 것만큼 귀찮은 건 없다.
그냥 놔두고 죽게 만들어도 전투 중에 일어난 사고로 처리될 뿐, 자신에게 비난의 화살이 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못 본 체하고 방관하고 있는 것도 기분 나쁘다.
"누구한테 명령하는 거야. 나는 조사기술관이다. 너희들의 데이터를 모으는 게 내 임무야."
히네크는 이데리하의 질책에도 개의치 않고 고압적인 태도로 말했다. 내버려두라는 식의 말투였지만 엔지니어의 호위 역시 임무 중 하나이다. '네 그러시군요'라고 넘어갈 수도 없었다.
"그렇게 죽고 싶어? 여기는 전장이다! 됐으니까 돌아와!"
프리드리히가 히데크의 가슴팍을 붙잡고 아스널 캐리어로 끌고 간다.
"놔!"
"고만하라고! 우리들은 니 뒤처리 해줄 만큼 널널하지 않어!"
하늘에 떠있는 기록용 드론을 붙잡아 아스널 캐리어에 던져넣는다.
"뭐 하는 거야!"
히네크가 드론을 쫓아 아스널캐리어로 상체를 돌린 순간 이데리하는 엉덩이를 밀어 그를 안으로 억지로 집어 넣는다.
어떻게든 골칫덩어리를 처리하고 프리드리히 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등 뒤에서 프리드리히를 덮치려고 하는 적대 생물이 눈에 들어 왔다. 프리드리히와 적대 생물 간의 거리는 불과 1알레. 안개로 시야가 제한당한 데다가 히네크와 다투는 데 정신이 팔려 적대 생물이 접근하는 소리를 듣지 못한 것이었다.
"프리드리히! 뒤!"
프리드리히는 이 데리 하의 고함소리에 등을 돌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적대 생물이 낫 모양의 팔로 그를 내리 찍었다.
"어.......?"
"위험해!"
동료를 지키려는 이데리하의 의지였을까. 이데리하는 예전에 리즈에게 들은 '힘을 쓰는 방법'을 따라하며 의식을 안개에 집중시켰다. 그러자 자신에게 모인 안개가 프리드리히에게 몰려가더니 물줄기가 되어 그의 몸을 감쌌다. 그리고 그 물줄기는 적대생물이 프리드리히의 정수리를 깨부수기 위해 내려찍은 팔을 튕겨냈다. 적대생물은 프리드리히를 향해 내려 찍을 때의 반동으로 튕겨나가 크게 몸을 젖혔다.
"아, 살았..."
죽음을 각오한 프리드리히는 자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에 멍하니 중얼거렸다.
"멍하니 있지 말고 베어 버려!"
공격이 튕겨나가 당황한 적대생물을 추격하기 위해 이데리하는 프리드리히에게 날카롭게 지시를 내렸다.
"...! 어, 알았어!"
프리드리히의 두 자루의 검이 적대 생물을 향한다. 공수 반전, 적대 생물이 공격을 받아내기 위해 올린 팔 전체가 프리드리히의 반복된 검격에 무참히 썰러 나갔다.
겨우 코르벳을 적대 생물의 습격으로부터 지켜내고 코어 회수하러 갔던 리즈 일행 역시 귀환했다. 사상자를 포함한 대원들을 태우고 코르벳은 연대시설로 돌아간다. 그 코르벳 안에서 이데리하는 프리드리히를 구한 '성기사의 힘'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다. 자신에게는 이렇다 할 특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리즈나 디노와는 달리 자신은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런 자신이 이런 힘을 가져도 되는 걸까. 그다지 밝지 않은 생각이 이데리하를 지배했다.
안개가 지배하는 '소용돌이'의 공략이 끝난 지 3일 후 아침, 이데리하는 엔지니어의 연구동을 방문했다. 전투중에 '성기사의 힘'이 발현했기에 검사가 이루어진다고 했다. 몸 여기저기에 전극이 부착되었고 검역 시설에서도 본 적 없는 커다란 장치로 철저하게 조사가 진행되었다. 검사가 2시간, 3시간이 지나자 빨리 생활동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저기......, 아직 더 걸립...니까?"
지시는 전부 모니터에 표시된 문자로 진행 되었기 때문에 이데리하의 목소리만 이 실내에 울렸다. 엔지니어 자체가 원래 억제적이고 감정이 결여되어 있다고는 들었지만 이 검사실에 있는 엔지니어는 한결 같이 아무 말 없이 이 데리 하의 검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그게 크던 작던 이데리하에게는 아무런 지식도 주지 않겠다. 는 느낌이었다. 리즈나 디노는 지금까지 몇 번이고 이런 검사나 실험이라고도 할 수 없는 걸 당한 걸까라고 생각하니 무시무시한 한기가 덮쳤다. 어째서 이런 무서운 일이 반복될 '성기사의 힘' 같은 걸 습득해 버린 걸까. 이데리하는 음울한 기분이 들었다.
겨우 연구동을 나왔을 때에는 이미 저녁시간이 되어 있었다. 검사 중간에 먹었던 고형의 영양제로는 도저히 식사를 한 것 같지도 않아서 뭐라도 먹을 만한 것을 찾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이데리하!"
식당으로 가는 통로를 걷던 중에 옆 통로에서 달려온 프리드리히가 그를 불러 세웠다.
"왜 그래?"
"저번 작전, 구해줘서 고마워."
프리드리히는 그 말을 하기 위해 일부러 이데리하가 있는 쪽으로 달려온 것 같았다.
"......뭐야, 그런 거였나. 내...나도 그렇게 잘 될거라고는 생각 안 했다고. "
결과적으로는 잘 된 일이었지만 '성기사의 힘'이 발동한 것은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이후 비슷한 상황이나 사태에 직면했을 때에 다시 그렇게 잘 될 거라고는 보장할 수 없었다.
"나는 너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고, 그런 말 하면 섭해."
자신의 힘에 의해 도움을 받은 자가 있다. 그건 사실이었다. 그건 부정해도 되는 게 아니었다.
"......그렇...지. 미안해."
"좋아, 그럼 오늘 밥은 내가 쏘지! 약간의 인사치레 같은 거니까 사양 같은 거 하지 말라고?"
만면에 미소를 띄운 프리드리히를 따라 이데리하도 웃는다.
"괜찮......나? 나, 꽤 많이 먹는데?"
"맡겨 두라고!"
귀환한 코르벳 안에서부터 지금까지 귀찮은 힘을 얻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죽음과 맞닿아 있는 연대에서 함께 싸우는 전우들을 지킬 수 있었다. 그건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되겠지. '성기사의 힘'을 확실히 다룰 수 있게 된다면 이렇게 전우를 지키면서 싸울 수 있게 될 것이다. 문득 이데리하의 뇌리에 그런 생각이 지나갔다.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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