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리하 R1 3379년 [능력]
이데리하와 E4 소대원들은 코어를 끌어안고 도망치는 적대 생물을 뒤쫓고 있었다.
"도망치게 놔둘 것 같으냐!"
세리노가 적대 생물을 향해 셉터를 휘두르는 바로 그 순간, 주변에 있던 식물이 적대 생물과 코어를 보호하려는 것처럼 둘러싸기 시작했다. 셉터가 식물 내부로 흡수되었고 세리노도 셉터를 쥔 채로 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세리노!"
이데리하가 민첨한 움직임으로 세리노가 입고 있는 제복의 뒷덜미를 낚아채서 힘것 잡아당겼다. 다행히 셉터만 흡수당했을 뿐, 세리노는 이데리하 덕분에 간발의 차이로 목숨을 건졌다.
"괜찮아?"
"아, 그래, 괜찮아..."
검붉은 보라색이 감도는 식물은 마치 피부가 벗겨져서 살덩이가 드러난 짐승처럼 보였다. 이데리하는 식물의 그런 모습을 보고 본능적인 혐오감을 느꼈다.
"상황이 좋지 않다, 후퇴하라!"
코어와 적대 생물을 둘러싼 식물은 주변의 바위나 식물들을 흡수하며 점점 더 거대하게 변하고 있었다. E4 소대의 모든 소대원들은 이 식물이 라이플과 셉터만으로 상대하기에는 어림도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위력을 지닌 생물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적대 생물이 코어를 빼앗아서 숲 속으로 도망칠 때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 예상했던 소대원은 아무도 없었다. 지원 사격을 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춘 아스널 캐리어는 E1 소대와 함게 후방에서 이동하고 있었다.
"E1 소대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나?"
"통신이 연결되지 않습니다!"
"제기랄!"
식물은 마치 다의에 의해 움직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E4 소대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어떤 소대원은 식물 덩굴에 휘감긴 채로 공중으로 끌려 올라갔다가 땅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쳤고, 그 옆에 있던 소대원은 식물의 내부로 빨려 들어갔다. 이데리하는 세리노의 엄호 사격과 더불어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셉터를 휘두르며 식물의 거센 공격을 간신히 막아내고는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계에 다다랐다. 살기를 뿜어내는 식물 덩굴이 이데리하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내리쪽히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식물이 화염에 휩싸이는 광경이 보였다.
"이데리하, 세리노, 괜찮아!?"
목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리즈가 이데리하의 앞을 가로막고 서서 이데리하를 지켜주었다.
"E1 소대가 도착했다!"
"지원 사격을 개시하겠다! E4 소대는 후퇴하라!"
E1 소대의 소대장인 그렌의 명령이 떨어지자, 아스널 캐리어가 식물을 향해 미사일을 퍼부었다. 미사일 공격이 효과가 있었는지, 거대하게 변했던 식물의 형체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리즈, 지금이다! 다른 부대원들은 리즈를 엄호하라!"
리즈가 조종하는 화염은 식물을 상대로 엄청난 효과를 발휘했다. 리즈는 이데리하와 다른 소대원들의 엄호에 힘입어 화염을 조종하는 일에만 몰두한 결과, 화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엄청난 기세로 타오르며 넓은 범위로 퍼져나갔다.
"적대 생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데리하, 사격 개시!"
"라져!"
적대 생물은 이데리하가 발사한 총알에 맞아 쓰러졌다. 적대 생물의 죽음과 함께 거대한 식물도 화염에 휩싸여서 형체를 잃고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소화 약품을 살포하겠습니다."
곧이어 아스널 캐리어에서 소화 약품이 살포되면서 불이 꺼지자, 코어 주변에는 재로 변한 식물과 적대 생물의 사체만 남아 있었다. 리즈가 케이오시움에 오염된 영향으로 인해 화염을 다루는 능력을 발휘하게 되면서부터 E중대가 참여한 소용돌이 공략 작전의 성공률이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었다. 물론, 리즈의 눈부신 활약을 본 E중개 전체의 사기가 치솟은 점과 리즈의 활약에 자극을 받은 중대원들이 개인 단련에 힘을 쏟는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효과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E중대가 거둔 성과는 레지멘트 본연의 모습에도 조금씩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엔지니어들은 리즈처럼 특수한 능력을 각성한 대원들이 없는지 찾기 시작했고 모니터링에 참가한 대원들에게 다양한 검사와 실험에 대한 협력을 요청하게 되었다.
"이봐, 디노. 엔지니어가 모니터링실로 오라고 하던데."
"으엑. 이번 주에 예정되어 있던 모니터링은 다 끝난 거 아니었냐..."
리즈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발걸음을 멈췄던 디노는 노골적으로 진절머리가 난다는 표정을 드러냈다. 모니터링에 참가한 대원들은 예전에 비해 갑자기 불려가는 일이 훨씬 더 많아졌기 때문에 연구동에 머무르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지고 있었다.
"둘 다 고생이 많구마."
"모니터링만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 반항해봤자 변하는 게 없으니까."
리즈가 어개를 으쓱해 보이면서 말했다. 리즈는 화염을 다루는 능력을 얻은 이후로 마치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태도로 모니터링에 참가하고 있었다.
"아마 야간 훈련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돌아올 수 있을거야. 다른 대원들에게도 그렇게 전해줘."
"그라믄 이따 보자고."
"그래, 나중에 보자..."
리즈는 디노를 데리고 빠른 걸음으로 연구동을 향해 걸어갔다. 홀로 남겨진 이데리하는 할당된 훈련 일정에 따라 훈련용으로 제작된 모형 셉터를 묵묵히 휘두르며 개인 훈련을 하고 있었다. 혼자 훈련을 하는 사이에 어느덧 시간이 흘러 2인 1조로 모의 전투 훈련을 할 시간이 되었다.
"리즈하고 디노는 어디 갔어?"
"모니터링 쪽에 무슨 일이 있다는 것 같던데. 자세한 내용은 나도 몰라. 야간 훈련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돌아온다고 했어."
"또 불려갔어? 진짜 그 녀석들 고생이 많네."
중대원들은 다소 걱정 어린 표정으로 연구동을 바라보았다. 모니터링에 참가한 대원들은 모두 한결같이 모니터링이 끝나면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었다. 이데리하는 리즈나 디노와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모니터링에 관한 불평을 들을 기회도 많았다.
"모니터링을 끝내고 돌아오면 디노는 말할 것도 없고 리즈도 녹초가 되서 홀쭉해진 채로 널브러져 있당... 있더라."
"훈련을 빼먹을 수 있으니 좋겠다고 부러워한 적은 있지만, 항상 활력 넘치는 리즈가 그렇게 지쳐서 돌아올 정도면..."
"나중에 리즈와 디노의 몸 상태를 살펴보기로 하자. 지금은 둘의 상태를 걱정하기보다는 빨리 모의 전투를 시작해야 할 시간이 되었으니까."
누군가가 꺼낸 말에 다들 동의를 표하며 모의 전투 훈련을 시작했다. 이데리하는 로렌스를 향해 모형 셉터를 겨누고 맞서 싸울 준비를 했다.
모의 전투 훈련이 한창 벌어지고 있을 때, 훈련하는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는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기록 장치처럼 생긴 구체를 공중에 띄워놓고 훈련을 관찰하고 있었다. 남자가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고, 처음 보는 사람이 훈련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에 신경이 쓰였던 이데리하는 훈련을 하는 틈틈이 그 남자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데리하, 왜 그래?"
이데리하가 다른 곳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로렌스는 미심쩍은 효정을 지으며 공격을 멈췄다.
"아, 암것도 아녀. 근디, 우리 중대에 저런 사람이 있었디야?"
이데리하는 로렌스에게만 들리도록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서 손가락을 들어 그 남자를 가리켰다. 곁눈질로 남자의 모습을 확인한 로렌스도 전혀 아는 바가 없는지, 잠시 기억을 더듬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모르는 사람인데. 엔지니어 같긴 한데 저런 녀석이 있었나?"
"모르니께 물어보는 거 아녀."
훈련하는 모습을 줄곧 지켜보던 남자를 수상하게 여긴 로렌스는 때마침 훈련을 감독하러 온 벨킨에게 남자의 정체에 대해 물어보았다.
"벨킨 중대장님, 잠시 시간 괜찮으십니까?"
"왜 그러나?"
"저기, 저쪽에 서서 우리 훈련을 지켜보고 있는 저 남자는 대체..."
"응? 아, 히네크 기술관 말인가? 저 사람은 이번에 E중대로 배속된 엔지니어다."
"교체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고체되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게 아니야, 교체가 아니라 추가로 배속된 엔지니어라는 말이다."
벨킨은 로렌스의 말투에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게 무슨 말슴이십니까?"
"모니터링에 참가하는 대원들 이외에도 우수한 능력을 지닌 인물이 없는지 조사한다더군. 다른 중대에도 같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조사를 담당할 기술관들이 배속될 예정이다."
"아, 그렇게 된 거였군요. 그런데 지금 상태에서 인원들을 더 빼내 가면 작전에 지장이 생기는 거 아닙니까?"
"그 부분은 문제가 생기지 않게 알아서 잘 조정하겠지. 게다가 아직 누가 차출된다고 결정된 이야기도 아니잖아. 이해가 되었으면 빨리 자리로 돌아가서 훈련이나 마저 해라."
"아, 네. 시간을 뺏어서 죄송했습니다."
"바쁘실 텐데 죄송했습니다."
로렌스와 이데리하는 레지멘트 시설을 향해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는 벨킨에게 인사를 했다. 인사를 하느라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린 두 사람은 히네크라는 이름을 지닌 기술관이 있던 장소를 바라보았다. 히네크는 이미 돌아갔는지 보이질 않았고 히네크의 곁에 있었던 구체만이 그 장소에 남아 있었다. 이데리하는 그 구체가 신경쓰여서 견딜 수가 없었다. 구체를 가만히 살펴보다가 구체가 회전하는 것 같은 모습을 발견했다. 렌즈같이 생긴 부분이 이데리하가 서 있는 방향을 향해 움직였다.
"...뭐시여?"
그 순간, 이데리하는 구체와 눈이 마주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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