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랜드 R4 3372년 [이름]
그 날도 볼랜드는 셀레스티얼을 데리고 데니며 범죄조직 박멸에 열을 올렸다. 로젠부르그 제 7계층 레안드 지구, 아직 이곳에 남아있는 '프라임 원'의 거점을 괴멸시키기 위해서였다.
거점을 제압하는 데 성공하고 저택에 돌아가려고 할 때였다. 등 뒤에서 귀를 찢는 듯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볼랜드는 폭발음이 나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저쪽은……"
그곳은 제 7계층 근처의 제 6계층 엘모어 지구 방향이었다. 자산가나 귀족들이 많은 상위 계층에서는 그들의 목숨을 노리는 범죄가 끊이지 않았다. 방금 전의 폭발도 그 중 하나일 것이었다. 볼랜드가 범죄조직 박멸에 나선 이후로는 처음 있는 일이었지만.
"셀레스티얼, 가자"
볼랜드는 셀레스티얼을 올려다본다. 셀레스티얼은 범죄조직이나 테러집단을 괴멸시키는 힘은 있었지만 사람을 구하는 능력은 없었다. 하지만, 저 구획에서 활동하는 죄없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살아있다는 것, 숨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마음이 구원받는다는 것을 볼랜드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셀레스티얼은 볼랜드를 따라 아직 연기가 피어나고 있는 엘모어 지구로 날아갔다. 폭발이 있었던 구획은 주거구획이 아닌 상업구획이었다. 하지만 역시 상위 계층이라 할만했다. 이미 중앙에서 구원병력이 파견되었고, 폭발이 있던 장소를 중심으로 피난유도와 인명구조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볼랜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다.
"테러리스트들을 찾으러 가자. 어쩌면 녀석들이 사용하는 계층 간 비밀 통로를 발견할 수 있을 지도 몰라."
금방 결론을 냈다. 볼랜드는 셀레스티얼과 함께 혼잡함을 틈타 이 폭발테러를 일으킨 범죄자를 추적하기로 했다.
볼랜드는 제 6계층과 제 7계층을 구분하는 외벽을 상공에서 관찰했다. 이 구획은 제 6계층이었지만 범죄조직이 다수 분포한 제 7계층과 가까운 탓인지, 주변 건물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고 사용된 흔적도 없었다. 이곳은 상류층이 사는 상위 계층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슬럼가 같았다.
한밤중의 어둠과 섞여, 사람 그림자 같은 것이 움직였다. 볼랜드는 곧장 그 그림자를 쫓았다.
"어, 어라?"
하지만, 그림자는 외벽을 떠나 슬럼가로 변한, 건물들이 나란히 서 있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당연히 외벽에 계층 간 비밀 통로가 있을 거라고 짐작했던 볼랜드는 당황했다. 골목으로 들어가 버리면 이 곳 지리를 모르는 볼랜드는 더 이상 추적할 수 없었다. 힘을 원했기 때문이었을까, 셀레스티얼은 전투에 특화된 능력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완전히 놓쳐버린 상태에서는 탐지하기란 매우 어려웠다.
실패했다. 이래서는 의미가 없다. 볼랜드는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부족한 경험은 행동과 사고를 반복하는 것으로 커버할 수 밖에 없다.
"좀 더 생각하지 않으면……. 초조해 하지마……. 뭔가 방법이"
생각에 잠기면서도 볼랜드는 셀레스티얼과 함께 슬럼가로 변한 건물 위를 날고 있었다. 방금 전의 수상한 그림자를 다시 한 번 찾아내야만 한다고 생각하며 탐색을 계속했다. 그러던 중에, 숲처럼 나무들이 정비된 공원이 보였다.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을 장소지만, 지금은 잡초가 무성하고 놀이기구 손질도 안 되어 있는 그런 공원이었다. 그 구석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는 한 소녀를 발견했다. 입고 있는 옷이나 생김새를 보고 어쩌면 테러집단의 일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이 소녀가 나쁜 일에 손을 댔을 거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저기, 괜찮아?"
볼랜드는 그 소녀에게 말을 걸었다. 볼랜드는 소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소녀는 볼랜드가 내민 손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곧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만지지 마!"
소녀는 반사적으로 볼랜드의 손을 뿌리치고, 그대로 달려가 버렸다. 볼랜드는 그 날 예정된 행동을 다 멈추고 소녀를 찾아다녔지만 결국 발견하지 못했다.
그 후, 볼랜드는 범죄조직에 대한 공격을 이어나가는 한편 공원에서 만났던 소녀의 모습을 찾기 시작했다. 한밤중에 테러가 일어나면, 그 장소로 향했다. 몇 번이고 테러리스트 집단을 공포로 몰아넣으면서, 탈출 루트도 몇 개 부쉈다. 그대로 테러는 잦아들 분위기를 보이지 않았다. 테러 집단의 거점을 부숴 근본적으로 박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 소녀도 구할 수 없다. 볼랜드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시 소녀를 만난 것은, 처음 만난 이후로부터 수 개월이 지났을 때 쯤이었다. 이 때도 제 6계층의 귀족을 노린 테러가 발생했을 때였다. 볼랜드는 확신했다. 이 소녀는 제 6계층 또는 제 7계층에 거점을 두고 있는 테러조직의 첨병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또 만났네."
"그렇..네…"
테러 조직의 끄나풀로 활동하는 것 치고는 소녀의 표정이나 감정의 움직임이 너무 느렸다.
"네 이름은?"
"이블린……."
소녀는 고분고분 이름을 알려주었다.
"예쁜 이름이네!"
"너.. 너의 이름..은?"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볼랜드는 기뻐서 바로 답해버렸다.
"내 이름은 볼랜드야. 저기, 있잖아. 이블린은 어디 살아?"
다시 정보수집을 위해 질문을 한다. 이걸로 테러조직의 거점을 알아낸다면, 테러조직을 괴멸시키고 이런 잔혹한 짓을 하는 곳에서 이블린을 구해낼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한 질문이었다.
"미안해, 이제 가야 해."
하지만 이블린은 급히 일어서서 달려가버렸다.
"아, 기다려!"
볼랜드는 이블린을 뒤쫓았다. 하지만 이블린은 멍한 모습과는 달리 의외로 발이 빨랐다. 셀레스티얼을 불러내서 뒤쫓았지만 아무리해도 그녀를 따라잡지 못했고 결국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수확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을 알았다. 이름은 그녀를 구하는 실마리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돌아왔군."
방에선 오우란이 오렌지를 껍질채 먹고 있었다.
"오우란, 다녀왔어. 셀레스티얼도 수고했어."
손을 한 번 휘둘러 셀레스티얼을 대기상태로 만들고, 허공으로 사라지게 했다.
"오우란, 급히 조사해 줬으면 하는 게 있어."
볼랜드의 눈은 전에 없이 진지했다.
"오호?"
"이블린이라고 하는 이름을 가진,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아이를 조사해 줬으면 해."
신비한 소녀와의 만남 이후 오우란은 로젠부르그에 남아있는 전자 네트워크에 침입하여 볼랜드에게 범죄조직의 정보를 제공해 오고 있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 것인지는 볼랜드도 몰랐다. 게다가 오우란도 그 구조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 때 그 꼬마인가. 하지만 걔는 테러조직의 일원이잖아? 기록이 남아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러니까, 내 또래의 아이들을 조사해 줘. 어쩌면 범죄조직과 연관된 사건에 말려들어서 그렇게 됐을지도 모르잖아."
"흠,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조사해보지."
오우란은 느릿느릿 일어섰다.
"정말로?"
"그래."
볼랜드는 감동한 나머지, 오우란을 세게 끌어안았다.
로젠부르그 제 7계층 13구역. 이곳은 삼림보호를 이유로 구역 대부분이 나무로 뒤덮여 있었다. 그 숲 한 켠에 있는 큰 나무의 가지에 볼랜드는 셀레스티얼과 함께 내려섰다. 볼랜드의 시선 앞에는 삼림의 풍경에는 어울리지 않는 하얀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곳은 표면상으로는 먼 나라의 종교집단이 세운 시설이었다. 하지만 실체는 악질 테러집단이 그 첨병들을 교육시키는 기관이었다. 볼랜드는 오우란의 협력 하에 몇번이고 이블린과 접촉해 이야기를 나누고 드디어 이 곳에 도착하게 된 것이었다.
"기다려 이블린. 꼭 구해줄 테니까."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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