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훼손, 폭력 장면이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그레고르 R1 [공포]
깡마른 소년이 장난감 가게의 주인인 중년 남성에게 배운 대로 장난감 상자를 정성스럽게 포장하고 있었다. 그 장난감은 먼 옛날, 전쟁에서 사용되었던 「기계 동물」을 변형한 물건이었다. 기계 동물이라는 조형물이 소년들의 마음을 자극하는 모양인지, 이 가게에서 제일 잘 팔리는 상품이 되었고 지금 포장하는 장난감이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물건이었다. 포장을 끝낸 후, 장난감 상자를 손님에게 건네주고 대금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장난감 가게는 장벽 덕택에 피해를 입지 않았던 어느 상업 도시의 중심가에서 약간 벗어난 한구석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소년이 이 완구점에서 일하기 시작한 후로 한 달 남짓한 시간이 흘렀다. 이제야 겨우 상자를 포장하는 일과 손님을 상대하는 일에 익숙해졌다. 이 장난감 가게는 가게 주인과 소년, 둘이서 꾸려가고 있었다.
소년은 가게 안에 사람이 없어진 틈을 타서 가게 안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선반 위쪽부터 차례대로 닦으면서 먼지를 조심스럽게 털어냈다.
“…어라?”
마지막으로 바닥을 닦고 있던 와중에, 가게의 안쪽에 있는 유리 진열장 안에 직사각형의 도자기 장식품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청소는 다 끝냈어?”
장식품을 유심히 살펴보던 그 순간, 가게 안쪽에 있는 공방에서 주인이 얼굴을 내밀었다.
“아, 점장님. 조금만 더 하면 끝나요. 저…”
“응? 아, 이거? 조만간 우리 가게에서 인형을 취급할 생각이라서 말이야. 이건 그 시제품인 그레고르다.”
소년의 시선을 느낀 주인이 간략하게 설명했다. 가게 주인은 원래 장난감을 만드는 장인이었으면, 장난감 가게는 가게 주인이 직접 제작한 작품을 팔기 위한 매개체였다.
“그러셨군요. 하지만 인형은 좀처럼 보기 힘들던데요.”
“무슨 일이든 일단 도전해보는 거지. 인형을 찾는 손님이 늘면 우리 가게도 더 번창할 거야. 자, 알았으면 청소나 마저 해라.”
“아, 네!”
장식품에 정신이 팔려서 청소를 건성건성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한 소년은 몹시 당황하며 다시 청소를 시작했다.
며칠 후, 가게를 열 준비를 하면서 청소를 하던 소년은 유리 진열장 안에 놓여 있는 도자기 장식품에 구체 부품과 직사각형 부품들이 추가로 장착된 것을 발견했다. 인형에 대한 건 잘 몰랐지만, 가슴 부분과 아랫배처럼 보이는 부문이 구체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게 주인이 구체 관절 인형을 제작하는 모양이라고 짐작했다. 어제, 청소하다가 살펴봤을 때는 장식품 같은 물건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지난 밤에 가게 주인이 추가 작업을 한 것 같았다.
청소를 하면서 이동하다가 며칠 전에 손님이 사 간 기계 동물 모형이 꾀죄죄한 상태로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형태의 기계 동물 모형은 다 팔리고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물건이었기 때문에 소년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모형을 살펴보고 있었는데 때마침 가게 주인이 공방에서 나왔다.
“왜 그래?”
“점장님, 이 기계 동물은 벌써 다 팔렸고 재고도 없었던 거 아니었나요?”
“아아, 그거? 내 지인 중에 장난감 장인이 있는데, 그 사람이 급히 마련해 달라고 부탁했던 물건이야.”
“그랬군요. 하지만 좀 지저분해진 것 같아요. 깨끗이 닦아두는 게 좋겠죠?”
“그래, 부탁한다.”
소년은 기계 동물 모형을 들고 계산대 옆에 놓여 있던 의자에 앉아 청소를 시작했다. 온통 진흙과 흙먼지로 뒤덮여 있었지만, 진흙과 흙먼지 사이에 검붉은 무언가가 들러붙어 있었다. 녹슨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면봉에 물을 묻혀 닦아내자 금방 깨끗해졌다.
그 후로도 비슷한 일들이 계속 이어졌다. 인형에 추가 작업을 한 날마다 항상 무슨 일이 생겼다. 인형 제작은 제법 구색을 갖출 정도로 진행되었으며, 옷도 입혀져 있었다. 얼굴 제작 작업만 남겨 놓은 상태였다.
“점장님, 뭔가 이상해요. 밤중에 누군가가 숨어든 것 아닐까요…”
“그럴 리 없다. 내가 진열해놓은 물건을 잘 못 보고 착각한 거 아니야?”
소년이 가게 주인에게 여러 번에 걸쳐 이야기했지만, 가게 주인은 항상 기분 탓이라고 말하며 얼버무렸다. 실제로 현장을 보여준 적도 있었지만, 그 물건은 자기가 그곳에 놓아둔 것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내가 일을 너무 많이 시킨 것 같구나. 이거라도 마시고 오늘은 그만 돌아가거라.”
그런 상황이 이어지던 끝에 가게 주인이 소년의 몸 상태를 걱정하며 따뜻한 우유를 건네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소년을 얌전히 컵을 받아 들었다. 확실히 피곤하다는 느낌이 들긴 했다. 가게 주인은 소년이 따뜻한 우유를 마시기 시작하는 모습을 확인하고 공방으로 돌아갔다.
소년은 따뜻한 우유를 다 마신 후부터 급격하게 졸음이 쏟아지는 것을 느꼈다. 따뜻한 음료를 마신 탓에 몸이 한층 더 노곤해진 걸지도 몰랐다. 소년은 가게 주인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계산대 구석에서 잠시 눈을 붙이기로 했다.
소년은 갑자기 잠에서 깨어 정신을 차렸다. 잠시 눈을 붙이려고 했을 뿐인데 몇 시간이 흘러 주변이 어둠에 휩싸일 정도로 깊이 잠들어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방과 연결된 문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가게 주인은 아직도 공방에서 작업 중인 모양이었다. 너무 오래 자버려서 민망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가게 주인에게 인사는 하고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한 소년은 공방 문을 살며시 열었다.
하지만 공방 안에 주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공방 안으로 들어간 순간, 녹슨 쇠붙이에서 나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소년은 지독한 냄새에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가게 주인을 찾고 있었다. 혹시 무슨 사고가 일어나서 가게 주인이 크게 다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가게 주인을 찾던 도중에 가게 안쪽에 있는 수돗가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을 깨달은 소년은 수돗가를 살그머니 들여다봤다. 수돗가에서 무언가를 톱으로 자르고 있는 가게 주인의 모습이 보였다.
쓱싹쓱싹.
쓱싹쓱싹.
나무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자르는 소리가 들렸다. 수돗가에 있는 개수대에 절단된 물건들이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그 물건은 완만하게 휘어진 하얀 막대기처럼 보였다. 개수대에 놓인 막대기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그 후에는 무언가를 휘젓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물렁물렁한 덩어리를 꺼내는 모습이 보였다. 그 덩어리는 꺼내는 족족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덩어리에 시선을 고정하고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 덩어리는 붉게 물든 인간의 한쪽 다리였다.
가게 주인이 자르고 있는 물체가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은 소년은 목 안쪽에서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구토를 한다면 가게 주인에게 들킬 게 뻔했다. 소년은 어떻게든 들키지 않고 그 자리에서 조용히 빠져나가기 위해 노력했지만, 처참한 광경을 보고 공포에 질려버린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결국, 균형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소리를 들은 가게 주인이 소년이 있는 방향으로 얼굴을 돌렸다. 가게 주인의 얼굴은 시체에서 튄 피로 지저분하게 물들어 있었다.
“뭐야, 잠이 깨버린 건가? 이상하네, 계산대로라면 작업이 끝날 때까지 잠들어 있어야 하는데.”
가게 주인의 목소리에서 항상 느껴지던 다정함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고, 소년을 바라보는 시선이 광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히익!?”
소년은 거의 구르다시피 수돗가를 빠져 나와서 도망쳤다. 공방에서 뛰쳐나와 가게 문을 향해 달리려던 그 순간, 가게 안의 장난감이 일제히 소년을 향해 돌아섰다.
“왜… 어, 어째서!”
모형의 눈, 구시대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동물을 본떠 만든 봉제 인형의 눈들이 소년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늘더니 장난감들이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으, 으아아악!”
소년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가까이 있던 장난감을 주워들고 움직이기 시작한 장난감을 향해 집어 던졌다. 하지만 집어 던진 장난감은 물론이고 날아온 장난감에 맞아 충격을 받은 장난감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어나서 소년을 향해 다가갔다.
“얼굴에는 상처가 나지 않게 조심해라.”
가게 주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가게 주인의 목소리를 들은 소년은 화들짝 놀라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발밑에 모여든 장난감들이 소년의 앞길을 가로막으려고 했다. 소년은 모여드는 장난감들을 발로 차면서 가게 문을 향해 다가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바깥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가게 문에 손을 댄 순간, 강한 충격이 소년의 온몸을 덮쳤다.
“아슬아슬했구나. 너무 성가시게 굴지 말아라.”
쓰러지는 소년의 귓가에 가게 주인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하지만 소년은 그 목소리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소년은 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를 듣고 눈을 떴다. 따뜻한 우유를 마신 후, 그대로 아침까지 잠들어 버린 모양이었다. 소년은 가게 주인과 장난감에게 습격당한 일은 끔찍한 악몽 속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보다 가게 안에서 잠들어 버린 일에 대해 가게 주인에게 사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몸이 움직여지질 않았다. 열이 펄펄 끓는 상태로 앓아 누웠을 때처럼 몸이 마치 돌 같이 딱딱하게 굳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아니, 그보다 도대체 여기는 어디지.’
소년은 이제야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고 익숙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낯선 느낌이 드는 풍경이 시야를 메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좋은 아침이구나.”
가게 주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년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릴 수도 없었다.
“자, 가게로 나갈까?”
가게 주인은 마치 자신의 아이를 대하는 것처럼 다정하게 말을 건네면서 소년을 안아 올렸다. 가게 주인은 소년을 안아 들고 낯익은 장난감 가게 안으로 들어가더니, 가게의 한가운데에 새로 만들어진 유리 진열장을 향해 걸어갔다. 점점 다가오는 유리 진열장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깡마르고 초라했던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다.
창백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건강하게 살이 오른 오동통한 볼. 약간 졸린 듯이 내리뜬 눈. 옅은 색이 감도는 우아한 모양의 입술. 고귀함이 느껴지는 푸른색 귀족 의상과 왼쪽 가슴에 달린 푸른 장미로 만들어진 꽃장식은 가게 주인이 소년 인형에게 입혔던 옷차림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소년은 비명을 지르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도자기로 만들어진 입은 굳게 닫혀 있었다. 가게 주인은 유리 진열장에 비치된 호화로운 의자에 소년을 앉히고 방긋 웃었다.
“귀여운 나의 그레고르. 오늘부터 이곳이 네가 머물 곳이란다.”
가게 주인과 그레고르라고 불린 소년의 눈이 마주쳤다.
“너는 누구에게도 팔지 않겠어. 나의 가족이자, 나의 아들로서 영원히 함께하자.”
가게 주인의 눈은 어젯밤과 마찬가지로 광기로 번뜩이고 있었다.
아름다운 소년 인형이 진열된 장난감 가게는 날로 번창했다. 소년은 장난감 가게의 간판 역할을 하며 줄곧 가게 중앙을 차지하고 있었다.
-- 도와줘! 제발, 누가 나 좀 도와달란 말이야! --
소년은 가게 중앙에서 외치고 있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누군가에게 전해질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외쳤다. 하지만 소년의 목소리는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고, 전해지지도 않았다. 소년의 마음이 썩어 문드러지는 그 날이 올 때까지 소년은 쉴 새 없이 외쳤다.
“그레고르, 일어나거라.”
소년, 아니 그레고르는 아름다운 소녀의 목소리를 듣고 의식을 되찾았다.
“안녕하세요.”
“이번 체험은 어땠어?”
“너무 무서운 광경을 보았습니다. 가능하다면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아요.”
“굉장하구나, 그 감정은 매우 소중한 거란다. 한 번 체험했을 뿐인데 바로 이해하다니.”
“감사합니다, 주인님.”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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