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싹의 달 18일 오후 --
루비오나 왕국 수도 아발론으로 이어지는 산악지대에 말을 탄 무리 여럿이 나타났다. 그들은 모교지점인 산골짜기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었다. 목표지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비활성상태의 ‘소용돌이’가 큰 산맥에 틀어박혀 있는 형태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위험한 곳이었지만 이곳에 온 이유가 애초에 이 위험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남자들은 대상이나 여행자들이 이용하는 큰 산길에 도착하자 나뉘어 주변의 숲으로 들어가 야영 준비를 시작했다.
“어이, 너희들. 모여봐.”
해가 저물고 야영준비가 어느 정도 마무리됐을 무렵, 집단의 리더인 모건이 텐트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야영 준비는 끝났어.”
“고기를 조달해왔어. 고기!”
“말은 쉬게 해 뒀어. 상태는 양호해.”
각자 자기가 맡은 역할에 대해 보고했다.
“좋아, 오늘은 해산.”
모건의 호령과 함께 남자들은 적당한 장소로 흩어졌다. 일찍 텐트에서 잠을 청하는 자, 가지고 있는 무기를 손질하는 자, 제각각이었다.
“뭘 하든지 상관없는데 말이야. 내일 제시간에 못 일어나는 자식은 엉덩이를 벌집투성이로 만들어 버릴 줄 알아.”
모건은 그런 그들을 향해 무서운 말을 던지고 있었다.
-- 새싹의 달 19일 아침 --
모건의 무리는 산에 틀어박혀 있는 ‘소용돌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용돌이’는 비활성상태에서 서서히 반활성상태가 되고 있었다.
“누님의 예측대로군.”
“그렇지. 하지만 누나한테는 몸뚱이랑 이 정도 말고는 쓸 데가 없잖아. 못 맞추면 안 되지.”
모건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이봐, 그 말, 주디스 누님 귀에 들어가면 다치는 것만으로는 안 끝날걸?”
남자 중 한 명이 모건의 말에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 꼰지르면 죽여버린다.”
살기 어린 시선이 남자에게 향한다. 이미 모건은 오른손을 평소 허리에 휴대하고 있던 권총에 얹고 있었다.
“아, 알았어.”
“두목, 누님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알았다. 좋아, 너희들, 슬슬 위치해.”
모건의 한 마디에 남자들은 미리 정해둔 장소에 몸을 숨겼다.
모건 무리는 오늘 오후에 이 산길을 통과하는 대상을 노리고 있었다. 특별한 이유는 업었다. 억지로 이유를 만들어 내자면 정보상에게서 이 대상에 관한 정보를 샀다는 것 정도. 겨우 그 이유만으로 모건의 무리는 이 대상을 노리고 있었다.
“상인들 시체는 어떻게 할 거야?”
“주변에 던져버려. 어차피 밤이 되면 소용돌이가 이 주변을 다 삼켜버릴 테니까 말이야.”
“손이 많이 안 가서 좋군.”
“그래. 다들 재앙이라고 그래도 우리한테는 편리한 쓰레기통이나 마찬가지지.”
“맞는 말이야.”
남자들은 낄낄 웃는다. 하지만 입으로만 웃고 있을 뿐 매서운 눈매는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 새싹의 달 19일 낮 --
사냥감인 대상이 그란데레니아 방면의 산길에서 이쪽으로 오는 것이 보였다.
“좋아, 가자!”
모건의 신호와 함께 남자들은 말을 몰아 일단 대상의 앞길을 막았다. 그와 거의 동시에 반활성상태의 소용돌이가 활성상태가 되었다.
“어이, 어떻게 된 거야! 소용돌이는 비활성상태인거 아니었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어이, 앞에서 오는 저 녀석들은 뭔데?”
대상들 사이에서 동요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헤이, 먼저 갖는 놈이 임지다! 죽여버려, 부숴버려!”
모건의 호령에 남자들도 환성을 지르며 대상에게 돌진했다. 대상의 뒤편에서도 마찬가지로 대기하고 있던 남자들이 나타나 대상의 퇴로를 막았다. 산맥에는 ‘소용돌이’가 반활성상태로 위치해 있었고 그 반대쪽에는 마차가 지나갈 길 조차 없는 숲, 전후좌우, 어느 쪽으로도 도망갈 길은 없었다.
첫 먹잇감으로 지목된 건 대상 내에서도 가장 큰 마차를 몰고 있던 스톰라이더 마부였다. 모건의 총은 엔지니어 기술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어썰트라이플이었다. 원래 ‘소용돌이’의 마물을 쓰러뜨리기 위해 제작된 것이었다. 그것을 마물이 아닌 인간을 향해 사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답은 간단했다. 라이플의 엄청난 화력에 의해 스톰라이더는 산산조각나버렸다.
“쳇, 즐길 시간도 없군.”
산산조각난 사체를 보고 혀를 찬 후 모건은 일반 라이플로 바꿔 아연실색한 다른 스톰라이더의 배를 쏘았다.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던 스톰라이더에게 다가가 총상을 입은 배에 중점적으로 고통을 가했다. 절규와 함께 움직임을 멈춘 스톰라이더를 발로 차 날려버리고는 주변을 빙 둘러보면서 다음 먹잇감을 찾았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모건의 패거리들이 대상들을 유린하고 있었다. 먹잇감이 없다는 것에 아쉬워하던 찰나, 한 대의 마차에서 소리가 났다.
“히이이이이익!”
마차 안에서 중년 남성이 비명과 함께 굴러떨어졌다. 남성의 옷에는 누군가의 피가 흠뻑 묻어있었다. 그 모습에 모건은 빙그레 웃으며 중년 남성에게 다가갔다.
“사, 살려줘! 화물은 전부 줄게! 그러니까 목숨만은! 하으어어어어!”
모건은 목숨을 구걸하는 중년 남성의 양발을 주저하지 않고 양단했다. 중년남성은 이 세상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비명을 지르며 애벌레처럼 몸부림쳤다.
“저항하는 놈도 하지 않는 놈도 전부 죽여! 전부 죽여라! 으하하하하하!”
중년남성의 비명을 가르며 모건의 환희에 찬 웃음이 들렸다. 중년 남성을 적당히 유린하고 나니 등 뒤에서 동료의 목소리가 들렸다.
“두목! 그쪽으로 한 명 도망갔어!”
“쫓아가! 도망간 놈에게는 벌을 줘야지, 끔찍한 꼴을 만들어버려라!”
모건은 미동도 않는 중년 남성을 던져버리고 웃으며 동료들에게 말했다.
“쫓아가!”
두 동료가 말에 올라타 도망친 남자를 쫓아 숲으로 들어갔다. 모건이 이끄는 이 집단은 누구라도 많든 적든 잔학성을 가지고 있었다. 도망치다 잡힌 남자의 최후는 그들의 장난감이 되는 것뿐이었다.
“정말 시시한 녀석들이었군.”
마차 안에서 전신에 피를 뒤집어쓴 주디스가 나타났다. 손에 든 고깃덩이를 휴지조각 버리듯 던졌다.
“누나, 안에서 뭘 한거야?”
“보면 알잖아? 저거 가지고 놀았지.”
주디스는 방금 내던진 인간이었을 고깃덩이를 턱으로 가리켰다.
“보물들에 흠집을 내거나 한 건 아니겠지?”
의심의 눈초리로 주디스를 올려다본 모건의 뺨을 채찍 같은 무언가가 스쳤다. 뺨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간 그것은 채찍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소리를 내며 지면을 때렸다.
“내가 그런 얼간이 같은 짓을 할거라고 생각해?”
“자, 잘못했어. 그러니까 그 녀석은 좀 집어넣어. 부탁해.”
“흐음.”
주디스는 코웃음 치며 마차 안에 남은 고깃덩이와 짐들을 전부 내던졌다. 이 고깃덩이가 대상에서 어떤 역할이었는지 같은 건 모건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 새싹의 달 19일 밤 --
대상을 이끌던 상인과 스톰라이더가 전부 죽고 조용해진 산길에 찢어지는 비명과 웃음소리가 울러 퍼졌다. 곧 패거리 두 명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하면서 돌아왔다. 말에는 포승줄이 달려있었고 그 포승줄에는 이미 죽은 도망자인 듯한 자의 잔해가 묶여있었다.
“의외로 시간이 걸렸군.”
“장난을 좀 많이 쳐버렸어. 미안.”
“훗, 어쨌든 죽여버렸으니 상관없어. 문제없다.”
“그건 그래. 하하하.”
만족스러워하는 패거리 둘과 함께 웃고 있자니 마차 안에서 주디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철수한다! 곧 소용돌이가 활성화된다!”
주디스의 말을 신호로 모건 패거리는 빠르게 준비를 갖춰 그란데레니아로 이어지는 산길을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