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 R1 3376년 [분노]
"이렇게 한다고 한들, 언젠가는 모두 당해버리고 말 거야. 인간이 살 수 있는 지역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우리의 마을에도 소용돌이가 와 버려서……."
그리드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듯 불평한다. 다른 대원들은 평소 공포를 달래기 위한 행동이라 생각하며 한 귀로 흘려 버리고 있었다.
"그 입 좀 닥쳐. 네 놈의 우는 소리 따위는 듣고 싶지 않다고."
리즈는 그리드의 푸념을 잘라 막는다. 가나안의 수비대는 '마물'을 보았다는 주민의 보고를 받아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을 넘어 마을에서 떨어진 숲을 탐색하고 있었다. 대원은 20명 정도, 여러 연령대로 구성된 협객의 집단이었다.
"리즈, 애송이인 네놈은 모른다. 오래전부터 인간은 계속해서 줄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이웃 메르기스에도 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어떤가? 메르기스의 거리 자체가 소용돌이에 삼켜져버렸다."
그리드는 리즈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내뱉기 시작했다. 다른 수비대 대원은 이 남자의 푸념을 지긋지긋해했지만, 마물과 싸워야만 한다는 압박감 때문인지 아무도 그만두게 하려 하지 않았다.
"이 곳에 들어오는 동안 난민들을 봤겠지? 성벽에 달라붙어 살아가는 저 녀석들, 저들이 메르기스의 주민이지. 마물에게 조금씩 삼켜져 가고 있는 것이다. 불쌍한 일이지."
"입 다물라 했어, 아저씨."
리즈는 발을 멈추고서 그리드의 멱살을 쥐었다. 그리드의 키는 리즈보다 많이 작아 멱살을 잡혀 발끝으로 서 있는 꼴이었다.
"하아, 이 손 놓지 못하나. 애송이가!"
"불쌍한 건 당신이지. 조금은 입 다물고 앞만 보고 가보라고."
리즈가 밀치듯 손을 떼어 놓자, 그리드는 보기 흉하게 지면에 나가떨어졌다.
"하아, 바보 같은 자식, 무게 잡고 있네, 네 녀석의 아버지조차……."
"그 이상 말하면 네놈을 먼저 없애 버릴 테다."
리즈가 검에 손을 가져다 댄다.
"어이, 그만둬라. 상관하지 말라고, 무서운 거야, 이 녀석은."
부장 격인 백이 리즈를 멈췄다.
"이런 놈은 데리고 오지 말았어야 했어."
리즈는 백을 따라 대열로 되돌아갔다.
리즈는 어린 시절 이 수비대에 들어왔다. 이제 열여덟이 되었지만, 십 대의 초반부터 계속해서 싸워오고 있다. 원래 수비대를 인솔하고 있었던 것은 그의 아버지였다. 거리를 지키기 위해 수비대의 대장으로 마물이 침입하는 것을 막아 왔다. 그러나 2년 전의 전투에서 크게 다쳐 대장직을 그만두었다. 지금은 잃어버린 발을 이끌고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그런 비극을 눈앞에서 본 리즈였지만, 수비대를 그만두지는 않았다.
자신의 눈앞에서 아버지가 습격당했지만, 그것을 도운 것 또한 리즈였다. 빈사의 아버지를 혼자 구해낸 후에도 멈추지 않고 전선의 앞에 섰다. 그러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리즈는 어린 나이였음에도 수비대 안에서 경의의 대상이었다. '공포를 모르는 것이 아닐까'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리즈 자신 또한 공포를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눈앞에서 아버지가 습격당했을 때는, 마음속 깊이 공포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자신의 안에서 그 공포감 이상으로 마물에 대한 분노가 들끓었다. 공포보다는 분노. 리즈를 부추기는 것은 바로 그 감정이었다. 아버지는 그런 리즈에게 자주 그리고 엄하게 충고하였다.
"분노를 조절해라. 분노를 억누르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자신이 분노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계속해서 자각하도록 해라."
자신의 분노를 제어하는 것. 그리드가 초조한 태도를 멈춘 후, 리즈는 아버지의 말을 한 번 더 상기하고 있었다.
대열이 멈추고 부대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부대는 신호에 따라 훈련대로 전개를 시작한다.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찾은 마물의 위치를 서로 확인한다. 마물은 다양한 종류가 있다. 수비대가 완벽히 대적할 수 없는 강력한 생물이 나오면 어쩔 도리가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놓치지 않고 반드시 처리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용돌이의 마수들은 계속해서 늘어나, 거리를 삼켜 버릴 것이다.
"뱀이다!"
누군가의 소리가 울렸다. 길이가 약 20미터 정도의 거대한 뱀이다. 단, 뱀이라 했지만, 지상에 있는 것과는 같은 생김새가 아니다. 10개나 되는 눈을 반짝거리며 빛을 내는, 악몽과 같은 마수였다. 그러나 쓰러뜨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모두 신중하게 적을 둘러싼다.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대장의 신호와 함께 총성이 울린다. 그러나 뱀의 동작은 빠르다. 구부러진 목을 높이 들어 올렸다고 생각할 찰나 말도 안 되게 빠른 속도의 고리가 부대를 가로지른다. 순간 총성이 그쳤다. 뱀의 꼬리에 휘말린 협객이 고통에 비명을 지른다. 겁에 질린 대원들은 대열을 다시 잡는 것만으로도 온 힘을 쓰고 있었다. 다시 굽은 목을 들어 올려 주변을 곁눈으로 노려보는 뱀의 모습에 대원들은 모두 공포에 떨고 있었다. 뱀은 입을 벌리고, 입맛을 다셨다. 이 순간, 리즈는 공포가 주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리즈는 그에 굴하지 않고 뱀 앞으로 뛰쳐나왔다.
어안이 벙벙한 부대원 앞에서, 리즈는 단숨에 뱀의 목을 베어 떨어뜨렸다. 놀라운 검 기술이었지만, 그보다도 순식간에 상대의 품에 뛰어드는 담력이야말로, 리즈가 평범한 남자가 아니라는 증거였다. 부대에서는 환호성이 터진다.
" 잘 해치웠다. 리즈!"
대장이 말을 걸어온다.
"뭐, 모두 저 마수의 주의를 끌어준 덕분이지."
본심이 아니었지만, 리즈는 부대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그렇게 말했다.
부대는 마을로 되돌아왔다. 거리는 마수를 쓰러뜨린 것으로, 승리의 분위기에 약간 소란스러웠다. 밤이 되자 술집에서 연회가 시작되었다. 리즈는 그런 소란과 거리를 두면서도, 일단 참가는 하고 있었다.
"내 총으로 저 큰 뱀한테 '빵빵빵' 하고 마구 쏴댔지. 그랬더니 뱀 자식, 꽁무니를 빼고 도망치는 게 아니겠어? 그 순간 리즈가 숨통을 끊었다. 이 말이지."
흥이 오른 그리드가, 옆에 앉은 술집의 여자에게 자기 자랑을 늘어놓고 있다.
"얼씨구. 그리드 자식, 뒤쪽에 숨어 있었던 주제에 ."
부장인 백이, 카운터의 끝에 앉아 있는 리즈의 곁에 다가오며 말했다.
"뭐, 말뿐이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리즈, 미안하구나. 네게만 의지해서."
근래의 출격에서, 리즈에게 부대가 구제되는 일이 많았다.
"별로 개의치 않아. 아버지도 해 왔던 일일 뿐."
"아버지도, 훌륭한 전사였다. 하지만 리즈, 네게는 항상 놀라게 되는구나."
백과 리즈의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친구였다. 이 가나안의 마을에서 생활하고, 지켜왔다. 생업은 따로 있었지만, 마을을 지키기 위해 이 아수라장과 같은 곳을 헤쳐 온 남자였다.
"이대로 계속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백이 물었다.
"무슨 의미인가? "
"최근, 마물이 마을 가까이에 나타나는 일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소용돌이 자체가 가까이 다가왔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리지 않지만, 소용돌이에서 넘쳐 나온 마물들이 이 거리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군. 앞으로는 방심할 수 없게 되겠군."
"아아. 수비대를 더욱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의 인원수와 능력으로는 장난 정도에 지나지 않으니까 말이야."
"협력할게."
리즈 또한 현재 수비대의 능력에는 의문이 있었기에 동의했다.
"하지만 말이야, 내 본심을 말하자면, 이대로는 이 거리를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백은 자신의 잔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리드의 푸념도 말이지, 그건 그거대로 진실이 담겨져 있다. "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아버지도 당신도, 지금까지 이 마을을 지켜 왔다.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거고."
리즈는 차가운 탄산수가 들어 있는 잔을 들이켰다. 술은 좋아하지 않는다. 분노를 제어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시간문제일 뿐이지. 조금씩 조금씩 인간이 살 수 있는 공간은 줄어들고 있다. 이것은 확실하다. 홍수에 가라앉는 거리와 같은 일이지. 높은 곳에 지어진 집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지만 물이 늘어나게 되면, 그 높은 곳 또한 가라앉아 버리고 말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소용돌이는 말이야, 지금까지 단 한 개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 수는 계속해서 늘어갈 뿐이고"
"그렇다 한들 조용히 빠져 죽을 내가 아니지."
맘에 들지 않는 백의 태도와 말에, 리즈의 속은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래, 이 거리에서 조용히 죽을 일은 없다. 리즈, 너는 젊기 때문에 말이야."
백의 말의 의미가 통하지 않은 듯 리즈는 눈썹을 찌푸렸다.
"아발론에서 왔다는 상인단이 있었지?"
아발론은 대국 루비오나 왕국의 수도이며, 이 대륙에서 가장 번창하고 있는 도시 중 하나다.
"그 상인단에는 범상치 않은 남자가 있다. 우리 수비대를 일부러 만나러 왔다고 해서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그놈은 나보다 나이는 많았지만, 그란데레니아 제국의 병사이고, 지금은 어느 조직의 일원이라고 하더군."
백의 말에는 열의가 담겨 있었다.
"어쨌든, 그 조직은 소용돌이 자체를 공격, 소멸시키는 부대이고, 용사를 모으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대장은 그런 이야기를 단지 웃음거리로 여겼지만, 나는 흥미가 있어서 계속해서 들어 보았다."
리즈는 조용히 백의 말을 듣고 있었다.
"엔지니어들이 일부러 지상에 내려와서 만든 부대인 듯하다. 게다가, 머지않아 소용돌이를 소멸시킬 거라고 한다. 하지만, 전투에 참가할 뛰어난 인재를 모으는 데 고생하고 있는 모양이다. 뭐, 당연한 얘기지만 말이야. 자기 몸 챙기기에도 빠듯한 저 녀석들에게 그런 구름 잡는 듯한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다는 게 무리한 이야기일 만도 하지."
백은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말이야, 나는 그놈의 이야기. 믿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니 믿고 싶다고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백은 또다시 간격을 두고, 리즈를 바라보았다.
"처음으로 물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지."
백의 이야기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리즈. 자네, 가보지 않겠나?"
"뜬금없는 이야기군."
리즈의 마음의 흔들림은 또 다른 감정을 나타내고 있었다.
"아아. 그렇지만, 만약 그 녀석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마을을 구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뭐라고 하시려나?"
"미안하지만, 아버지에게는 내가 먼저 이야기했다.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네 아버지는 막다른 골목에 처한 상황에서도 오랫동안 조언을 해주며 함께 싸워 왔다."
리즈가 고심하는 듯 보였는지 백은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리즈, 네게는 타고난 능력이 있다. 아주 특별한 능력이지. 너는 이 술집에 있는 녀석들과는 다른 것을 가지고 있다."
대원들은 모두 술에 취해 노래 부르며 떠들어대고 있다. 긴장감으로부터의 해방에 빠져 있었다.
"난 잘 모르겠는데?"
"나는 운명이다 아니다는 믿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운명에는 무엇인가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가려면 어떻게 하면 되나?"
열의를 띤 백의 상태와는 대조적으로 리즈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갈 맘이 생긴 건가?"
"아직은……. 하지만 나쁘지는 않은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말이지."
"그 남자는 아직 벨의 여관에 있다. 너라면 꼭 받아줄 거다. 내일 만나러 가도록 하자."
백은 파안대소하며 술을 단숨에 들이마셨다.
"젊고 경험도 풍부한 훌륭한 인재군."
조직의 남자는 헤이겐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리즈가 단번에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곧바로 본대에 합류하도록 하지. 연락은 먼저 해둘 테니 걱정하지 말고 가도록 하게."
헤이겐은 서면에 무엇인가를 작성하며 말했다.
"서쪽 편을 향하는 다음 상인단과 소즈버그까지 가도록 하게. 그쪽의 지부에서 본대로 가 주게나."
곧바로 루비오나 왕국의 왕국은행 보증수표를 한 장 잘랐다. 계속해서 한 장 더. 금액을 기재한 수표를 잘랐다.
"이것은 경비와는 별도의 계약금이네."
돈 때문에 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거절할 이유도 없었으므로, 리즈는 그것을 받았다. 상당한 금액이었지만, 특별히 흥미를 가지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받아 주면 좋겠다고 멍하니 생각했다. 서쪽을 향하는 상인단이 출발할 때까지 사흘 정도 남아 있었지만, 리즈는 평소와 같이 지냈다. 아버지에게 여행을 떠나는 것에 대해 말했지만 크게 문제 될 일은 없었다.
"대장에게는 백이 잘 얘기 해 준다는구나."
"아아, 나도 전해 두도록 할게."
어릴 적 어머니를 여의고 난 뒤 지금까지 단둘이서 살아왔다. 싸우는 방법도 인성 교육도, 모두 아버지에게 가르침을 받아 왔다. 지금의 아버지는, 잃어버린 발을 이끌며 대장간 일을 돕고 있다. 먹고 살기에 곤란하지는 않을 것이다. 수비대의 대표였던 아버지는 리즈의 자랑이었다. 그리고 그 지위를 잃었다 한들 리즈에게 있어서는 소중한 아버지였다. 대화는 가장 자신 없는 두 사람이었지만, 서로 이해하고 있었다.
여행길에 나서는 날이 밝았다. 아버지는 수표를 받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기에 조용히 책상 속에 감춰 두었다. 언젠가 찾게 된다면 그걸로 전부였다. 아버지는 현관 앞에서 짐을 든 리즈를 배웅했다. 마치, 대수롭지 않은 여행을 떠나는 듯, 태연한 헤어짐이었다.
"갈게."
"그래, 잘하고 와라."
"물론이지."
이 정도의 말만 주고받은 채 상인단이 기다리는 성문으로 향했다.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리즈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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